[단독] “말기 환자에 희망을”… 美, 임상시험 약 사용 허용
입력 2014-05-20 02:21
지난해 11월 미국 콜로라도주의 에이미 오든은 혈액암으로 2년간 투병하던 남편 닉을 잃었다. 남편은 한 제약사에서 임상시험 중이던 신약을 써보겠다고 요구했지만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에이미는 “닉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면서 “닉이 초기 임상시험 결과 효과를 봤다는 52%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0%보다는 52%의 확률이 낫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닉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그 약을 써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콜로라도 주지사는 17일(현지시간) FDA 승인이 없더라도 임상시험 중인 신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할 수 있는 권리(Right to Try) 법안’에 서명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미국 최초인 콜로라도주에 이어 루이지애나주와 미주리주도 같은 법이 의회를 통과해 주지사의 서명만 기다리고 있다.
새 법은 FDA의 복잡하고 지루한 승인 절차를 생략하고 임상시험을 하고 있는 약을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 희망이라도 잡고 싶은 말기 환자는 간단한 처방이나 의사의 추천만으로도 제약사에 신약 사용을 요구할 수 있다. 법의 기본 구상은 최근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일부 모티브가 됐다. 영화는 에이즈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멕시코에서 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대안 약물을 들여와 자신과 다른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FDA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19일 이 약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타일의 약’으로 표현했다.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법안을 주도한 조앤 지널 콜로라도주 하원의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죽음과 직면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가능한 모든 약을 써볼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미도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병뿐만 아니라 마지막 치료법을 얻기 위해 싸우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 가족이 갖지 못했던 희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갖게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논리다. FDA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는 기관의 임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뉴욕대 랜곤 메디컬 센터에서 생명윤리 분야를 담당하는 아서 캐플란 박사는 “현실은 신약 치료 과정에서 단지 FDA를 빼내버리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 법이 제약사들의 협력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서 “제약사들은 높은 비용과 공급 부족, 법적 책임에 대한 우려 때문에 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약을 제공하는 것에 소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FDA의 눈 밖에 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새 법에 적극적으로 따를 제약사가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