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눈물의 대통령 담화
입력 2014-05-20 02:53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기자회견과 함께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노변정담(爐邊情談·Fireside chat)이 효시로 꼽힌다. 대공황 극복에 나선 그가 라디오에 출연해 뉴딜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를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형식이 아니라 친지들과 화롯가에 둘러앉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한 방식을 취해 인기가 대단했다. 재임 중 300여회 노변정담을 해 수천만 통의 격려 편지를 받았다. 지미 카터 대통령도 노변담화를 즐겨 했지만 크게 호응 받지는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기자회견과 별도로 가끔 담화를 발표했지만 직접 하기보다 공보실장을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첫 문장은 꼭 ‘나는’으로 시작했다. 1958년 11월 28일 야당을 호되게 비판한 이 대통령의 담화는 이런 식이었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다만 한두 정당이라도 민중의 심리를 이산(離散)시켜서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말살시키려는 일이 생기려는 것을 걱정하는 바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60년대에는 라디오, 70년대에는 TV를 통해 담화를 자주 발표했다. 국민들에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야당을 비판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역시 ‘나는’이란 표현을 썼다. 전두환 대통령은 ‘본인은’으로 시작하는 담화를 자주 발표해 국민들 귀에 익었으며,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저는’이라고 낮췄다.
토론을 좋아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담화보다 기자회견을 선호했다. TV 토크쇼 형식인 ‘국민과의 대화’도 즐겼다. 기자회견을 꺼렸던 이명박 대통령은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제목의 주례 라디오 담화 기회를 꾸준히 가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기자회견보다 담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취임 1주년을 맞은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담은 장문의 담화를 발표했다. 원고지 97장 분량을 41분 동안 지루하게 읽는 바람에 설득력이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 계획이 나오자 정치권 일각에서 소통 강화 필요성을 이유로 기자회견을 하라고 압박했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19일 담화 방식을 택했다.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이어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한 것은 다행이다. 모처럼의 눈물이 담화의 약점을 보완해 줬다고나 할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