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행] 완치 가능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 소홀히 하면 악화
입력 2014-05-20 02:25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교수·환우들 CML 주제 좌담회
[편집자 주] 국민일보 쿠키미디어는 올바른 암 질환 치료·예방 정보 제공을 위해 ‘암과의 동행’ 섹션에 ‘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획연재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기획은 의료 현장에서 암 환자들과 함께 호흡하는 대한민국 암 명의(名醫)들의 조언을 통해 암 예방과 치료, 일상생활 관리 등의 정보를 담았습니다. 지난 4월 30일 진행된 ‘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백혈병 편’에서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김동욱(사진) 교수가 강사로 나서 백혈병 환우(루산우회·한국백혈병환우회)들과 함께 만성골수성백혈병(CML)에 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조기 발견·지속적 모니터링 중요
◇만성골수성백혈병 지속적 치료와 관리로 완치 가능=만성골수성백혈병(CML, Chronic Myeloid Leukemia)은 9번과 22번 염색체 이상으로 인해 조혈모세포가 병든 혈액세포를 만드는 혈액암이다. 과거 ‘백혈병’ 하면 불치병으로 여겨져 왔지만, 지난 10년간 다양한 표적항암제가 개발돼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관리하면 완치까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치료를 소홀히 하면 언제든지 병이 악화될 수 있으며, 가속기를 거쳐 급성기로 전환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CML 치료의 권위자인 김동욱 교수는 이날 ‘백혈병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주제로 열린 환우들과의 좌담회에서 “CML의 경우 초기에 증상이 거의 없다. 병이 악화되더라도 사망 6개월에서 1년 전에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특히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에서 만든 제3차 CML 국제표준치료 지침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미국·유럽 등을 주축으로 전 세계 백혈병 전문가 32명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지난해 ELN 2013 표준지침이 완성된 것. ELN 국제표준지침은 전 세계 70% 이상의 국가 및 병원에서 진단·치료에 적용하는 기준자료가 된다. 김동욱 교수도 유럽백혈병네트워크 패널위원으로 선정돼 ELN 국제표준지침 제정에 참여했다. 최근 개정안에서는 첫 치료 후 3개월부터 유전자검사를 통해 치료 결과를 평가하도록 하는 지침이 신설됐다. 최근 허가된 이클루시그와 보술립, 오마세탁신 등의 항암제와 한국에서 개발된 신약인 슈펙트의 치료효과도 언급돼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날 김 교수는 암 유전자 검사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치료제 투여 후 첫 3개월이 제일 중요한 시점”이라며 “정밀한 유전자 정량 검사를 통해 3개월마다 백혈병 유전자 소멸 여부를 살펴 완전유전자 상태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환자에 맞는 표적항암제 선택과 꾸준한 복용 필수=표적항암제 투여는 백혈병 치료에 있어 핵심이다. 최근 획기적인 표적치료제들의 잇단 개발로 생존율이 높아지자 환자들은 매일 항암제를 복용하면서 암과 동반자가 돼 살아가는 문제를 놓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 치료제로는 글리벡, 타시그나, 스프라이셀, 슈펙트 등이 대표적이다. 한 환우는 “어떤 항암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를 물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약마다 특성이 다르고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유일한 항암제는 없다. 다만 환자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치료제를 처방 받아 꾸준히 사용하게 되면 CML을 당뇨 등의 만성질환처럼 평생 관리하며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환자들 중에는 약을 깜박하고 먹지 않거나, 부작용을 이유로 임의로 약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김 교수는 “피부발진, 울렁거림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약을 중단하면 치료 가능한 병에서 불치병으로 바뀔 위험이 있다”며 “선택된 약제가 환자에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복약 순응도를 높여 최상의 치료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 먹으면 평생 복용’ 인식 변화
현재 백혈병 표준 치료약으로 글리벡이 있다. 또 최근에는 글리벡 내성으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2세대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가 등장했다. 여기에 국산 CML 신약인 슈펙트 등 새로운 신약들이 1차 치료제로 등장할 경우 ‘글리벡’(2013년 6월 특허만료)과 글리벡의 부작용 및 내성을 극복한 2세대 치료제인 스프라이셀, 타시그나와 본격적인 경쟁을 하게 된다.
한 환자는 항암제 복제약의 효능에 대해 물었다. 국내에서 수십종의 글리벡 복제약이 쏟아졌지만 처방은 보훈병원과 경찰병원 등 국가에서 운영하는 일부 병원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현재 글리벡 복제약과 오리지널 글리벡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 연구는 없다”며 “다만 사우디와 인도, 러시아 등 일부에서 진행한 복제약의 임상 치료 보고에 따르면 복제약의 경우 부작용이 늘고 치료 효과는 저하됐다는 보고가 있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복제약과 오리지널 약의 치료 효과가 동일하다는 보고도 있다.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암제는 한 번 복용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약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최근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 환우는 글리벡 복용을 중단하는 연구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글리벡을 복용한 108명의 환자들을 추적 관찰한 암정복 정부과제 연구에서 약 70%는 약을 끊은 뒤 약 1년 6개월간 암 유전자가 다시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유전자검사상 완전유전자반응 상태가 3년 이상 유지된 경우의 환자는 약 복용을 중단해도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고 답했다.
아시아 최초 백혈병 치료제 슈펙트
◇국산약 ‘슈펙트’ 출시 후 다른 치료제도 약값 인하…환자 부담 줄어=국산 신약 슈펙트(성분명 라도티닙)의 안전성 및 효능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김 교수는 “슈펙트는 글리벡 내성 환자에게서 치료효과가 우수하지만 다른 치료제처럼 부작용도 있으므로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적정한 용량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슈펙트의 장점은 저렴한 약값과 아시아 최초의 백혈병 치료제라는 점이다. 최근 글리벡 치료에 실패했던 환자들을 대상으로 슈펙트 2상 임상을 진행한 결과가 유럽혈액학회의 공식잡지인 ‘Haematologica’에 임상 연구 논문으로 게재됐다. 슈펙트는 유럽혈액학회(EHA)와 미국혈액학회(ASH) 등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2012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글리벡 치료에 실패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2차 치료제로 슈펙트를 승인했다. 현재 국내의 슈펙트 복용 환자는 약 200명 정도로 전체 환자(약 3600명)의 6% 수준이다.
평생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고가의 항암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 혈액학회지(Blood)에서는 2013년 사설을 통해 각 국가별 CML치료제의 경제적 비용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김 교수는 “약값이 저렴해지면 환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며 “미국이나 유럽은 약값이 국내보다 3∼5배 비싼 편이며 동남아도 신약의 약가가 한국보다 2배 비싼 데다 여전히 글리벡이 주된 약으로 쓰인다. 한국은 슈펙트가 개발된 이후 다국적 제약사가 기존 백혈병 치료제의 약값을 낮추는 결과를 얻어 CML 약값이 제일 싼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전 세계에서 한국의 CML 치료제의 비용 부담이 가장 저렴하다고 지적하고, 이는 슈펙트 등 새로운 신약의 등장으로 인한 가격경쟁에서 기인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만 아직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제한이 있는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18세 미만의 청소년에게는 2세대 표적항암제 투여가 불가능하며, 글리벡을 투여하지 않고 2세대 표적항암제를 교차 투여할 경우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사전 심의를 통해 허용하겠다는 심평원의 입장을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환자는 “항암제 복용 중 임신을 할 경우 출산이 가능한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여성의 경우 뱃속에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하면 기형아 발생률이 100배가량 높아진다”며 “일정 기간의 항암제 복용으로 완전유전자반응을 얻은 후 2년 이상 약물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임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2001년 30%였던 만성골수성백혈병의 5년 생존율이 2011년에는 약 94%가 됐다. 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정확한 국제 표준지침에 따라 선택된 약제가 환자에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최상의 치료효과를 내도록 환자와 함께 의사가 지속적으로 고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윤형 쿠키뉴스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