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교수의 백혈병 이야기] 美 연수서 다양한 유전자 분석기술 습득

입력 2014-05-20 02:27


한국에서 최초로 시행한 비혈연간 이식을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하고자 조혈모세포 이식 분야에 명성이 높았던 미국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센터(FHCRC)에서 1997년 6월부터 교환교수로 연수를 시작했다. 프레드허친슨 암연구센터는 세계 최초의 조혈모세포 이식 성공으로 199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도널 토마스 교수가 연구 활동을 하던 민간 연구소다. 이곳은 시애틀의 기업과 시민들이 암 예방 및 퇴치 연구 성금을 조성해 1975년에 정식으로 설립한 백혈병과 조혈모세포 이식 연구를 선도하는 암 연구소다.

동물을 이용한 새로운 조혈모세포 이식 기술을 연구하고자 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멘토였던 앤 울프리 교수는 비혈연간 이식의 성공을 좌우하는 인간백혈구항원(human leukocyte antigen, HLA)이 혈액세포에서 어떻게 발현하는지를 연구하도록 지도했다. 한국에서 이미 활용하고 있던 분자생물학 진단 기술을 확대해 HLA 유전자 전사 과정에 대한 기초 연구를 하며, 다양한 유전자 분석기술을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당시 연구소에서는 이식을 통한 이식편의 ‘면역관용’(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에 인체가 반응하지 않도록 해 면역억제제 투여 없이 생존이 가능한 상태) 현상에 대한 임상 적용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연구를 통해 항암제 강도는 줄이면서 면역 억제력을 증강시켜, 항암제로 인한 합병증이 많이 발생하는 고령환자나 이식이 어려운 환자에게 이식 후 합병증을 줄여 이식 성공률을 높이고자 하는 ‘미니이식’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나아가 간경변이나 만성신장병 환자에게 미니이식을 시행한 후에 면역관용 현상을 유도한 후,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해 면역억제제의 복용 없이 이식된 장기를 평생 안정적으로 생착시키는 다장기이식 연구가 동물실험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치료 기술의 개발과 함께 백혈병의 진단 기술에서도 주목할 만한 발전이 있었다. 1990년대 초에는 형광 물질의 방사 파장의 차이를 이용해 유전자의 양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측정하는 ‘실시간정량적중합효소연쇄반응법(RQ-PCR)’이 개발되고 있었다.

필자는 백혈병 관련 유전자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새로운 진단기술이 향후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진단과 치료 평가에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1999년 5월에 실험기기를 개발한 회사가 개최한 제1차 RQ-PCR 실험 워크숍에 참여해 그 원리와 실험 기법을 직접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미국에서의 연구를 계속하기를 원했으나 조기 귀국을 종용하는 스승 김춘추 교수님의 요청으로 RQ-PCR 실험 장비인 iCycler를 구입해 주실 것을 귀국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귀국 직후 곧바로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해 그해 12월 국내 최초의 RQ-PCR 기법을 정착시켰다.

미국에서의 연수는 나에게 다양한 분자생물학 실험기법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연구소 운영, 연구비 집행, 연구 결과의 진실성 및 저자의 자격에 대한 미국 의학계의 엄격한 연구 윤리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미국에서는 연구 저자의 자격요건이 엄격하다. 이는 연구를 설계하거나 실험을 직접 수행한 경우, 결과의 분석에 참여한 경우, 직접 논문을 작성한 경우에만 저자로서 인정될 수 있다. 이 기간 중 시간을 내어 읽었던 ‘서바이벌(Survivor)’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내용에는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된 월스트리트 저널의 여자 기자가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 휴스턴, 시애틀의 최고의 백혈병 치료 병원을 방문해 직접 의사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자신의 백혈병 치료를 위한 최고의 주치의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느낀 많은 감정들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어 나에게도 백혈병 전문가로서의 자세에 대한 많은 교훈을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