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들의 이야기-루산우회] 여럿이 함께 등산하며 백혈병과 싸운다
입력 2014-05-20 02:26
“처음에는 한 발짝 떼기도 어려웠어요. 숨이 가빠 제대로 산을 오르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지쳐 쓰러져 포기하고 싶을 때 함께 등산하는 나의 가족들과 루산우회 동료 환우들, 김동욱 교수님이 있어 정상까지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치료 의지를 다졌습니다. 산 정상에 도달했을 때 얻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요.”
한번 발병하면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이러한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건강한 몸이 병마와 더 잘 싸운다’는 깨달음을 얻은 환우들은 산악 모임인 ‘루산우회’를 결성했다. 길고 긴 투병생활이 가져다준 엄청난 치료비 부담, 오랜 병치레로 인한 가족들과의 갈등, 육체적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자 이들이 선택한 것은 산행이다. 이들은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백혈병과 맞서 싸운다.
지난 2005년 결성된 루산우회는 백혈병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에 모인 환우회로 환자와 그 가족 및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으로 구성됐다. 충북의 조령산에서 1박 2일 캠프로 첫 모임을 시작해 서대산, 속리산, 덕유산, 한라산에서 함께 등반을 하며 우정을 다졌다. 이들 중 일부는 2006년, 2007년 두 차례 5000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산행을 탤런트 손현주씨, 신애씨와 함께 했다.
루산우회를 최초로 결성한 최종섭씨는 덥수룩한 수염에 구릿빛 피부의 건강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다. 백혈병 환자들이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이 창백하고 붓는 특성을 보이지만 최씨는 산을 타느라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누가 봐도 백혈병 환자는 아니었다. 2000년 백혈병을 얻었다는 최씨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병원 안에서 백혈병 환자들을 상담해 주다가 주치의인 김동욱 교수와 상의해 루산우회를 만들었다”고 창립 배경을 설명했다. 서울·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제주 지역에 6개 지부를 둔 루산우회는 매월 각 지부별로 정기적인 산행과 모임을 하며 서울, 지방 환우들 간에 투병 정보를 공유하며 백혈병을 극복하고 있다. 홍보대사 탤런트 최석구씨의 사회로 매년 봄에 1박 2일 CML 환우 캠프를 열고, 9월에는 CML DAY(만성골수성백혈병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과거 골수이식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암울했던 시절, 수많은 환자들이 병마와 싸우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한 환우는 “골수이식 외에는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적합한 이식기증자가 없을 시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때 시절을 회상했다. 하지만 글리벡을 필두로 차세대치료제인 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등 표적항암제가 계속 개발되면서 백혈병 정복의 길이 생겼다.
이들 중에는 20년 이상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이도 있고 골수 이식과 표적항암제 치료를 반복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도 있다. 치료에 실패할 때마다 극적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이도 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환우들이기에 아픔을 나누고 희망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장윤형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