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의 시편] 노란리본과 존중의 영성
입력 2014-05-20 02:20
세월호가 침몰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노란리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그 주 금요일 필자는 여느 때처럼 극동방송 ‘사랑의 뜰안’을 진행하고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컴퓨터 화면에 한 통의 문자가 떴다. 노란리본은 무속에서 노란나비를 상징하고 있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의미하기에 사탄이 세월호를 틈타 영적인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었다. 그 청취자는 방송에서 이 사실을 알려 기독교인들이 노란리본을 달지 않기를 희망했다.
방송 중 이런 문자를 받으면 어떻게 해석하고 소화해야 할지 당혹스럽다. 알려야 할지, 침묵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앞으로도 유사한 일이 기독교 세계관에 혼란을 가져오고 분열을 야기할 수 있기에 ‘노란리본’을 기독교 세계관 저울에 달아보았다.
먼저 생각할 것은 노란나비를 무속에서 뭐라고 하던지 그건 그들만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노란나비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노란나비는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노란나비와 노란리본의 상관관계이다. 나비는 나비이고 리본은 리본이다. 최초에 누가, 어떤 생각으로 노란리본을 달았던지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현 시점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 된다.
성서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노란리본 캠페인이 가한 일인지 아닌지를 논할 때 그 논쟁이 덕을 세우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일로 파생되는 분열을 더 경계해야 한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똑같은 논쟁이 있었다. 고린도시장에서 파는 대부분 음식은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었다. 여기에 몇 가지 가르침이 있다. 먼저 묻지 말고 사 먹으라고 했다. 묻고 나면 살 수 없고 듣고 나면 그 말에 예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는 먹지 말라고 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이 시험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먹을 때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하면 먹지 말라고 했다.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난하지 말고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에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노란리본 캠페인도 성서의 가르침에 최고의 권위를 두고 접근해야 한다. 노란리본이 꺼림칙하다면 달지 않으면 된다. 자유하면 캠페인에 참여하면 된다. 그리고 참여하는 자와 참여하지 않는 자가 서로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고 서로를 존중한다면 하나님이 미소 지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유가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양보하겠다고 했다. 한 차원 높은 ‘존중의 영성’이다. 필자는 노란리본을 마음에 달았다. 혹시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가 필자의 겉옷에 달린 노란리본을 보고 구천에 떠도는 영혼이 생각나서 걸림이 된다면 참여할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산 로고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