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안전 이자 무시하다 대출만기일에 터진 빚더미”

입력 2014-05-19 02:44


“세월호 참사는 한마디로 대출만기일에 갚아야 할 빚이 한꺼번에 돌아온 겁니다. 속도와 이윤만 중시해 이자처럼 갚아 나가야 하는 안전비용을 소홀히 했다가 만기가 돼서 터져 나온 거예요.”

서울대 사회학과 이재열(53·사진) 교수는 18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비유했다. 이 교수는 “상식적으로 지킬 것만 제대로 지켰어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다”며 “한마디로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해 생긴 사고다. 빠른 산업화 성과의 그림자는 아직도 짙고 어둡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위험을 ‘미래형 위험’과 ‘과거형 위험’의 두 가지로 진단했다. 미래형 위험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대두했다. 기후변화, 황사, 환경호르몬, 인터넷 대란 등 시공간적 경계가 사라지면서 생긴 위험 요소다. 책임 소재를 어떤 개인이나 집단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과거형 위험은 ‘후진국형 인재’를 말한다. 과도한 이윤 추구로 시스템·제도·법규·조직문화·직업의식 등에 문제가 쌓이면서 발생한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등 1990년대 발생했던 재난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가 미래형 위험에 신경 쓰다 터져 나온 과거형 사고인 셈이다.

이 교수는 “조선·해양 기술은 인류사에서 수천년간 발전해 오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며 “태풍이 불지도, 암초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배가 가라앉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개탄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 과거형 위험은 사라지는 추세로 봤지만 착오였다”며 “미래형 위험에 주목하면 과거형 위험이 닥치고, 과거형 위험에 주목하면 반대로 미래형 위험이 닥치는 진퇴양난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과거형 위험을 야기하는 원인을 ‘성장 패러다임에 따른 가치체계의 혼란’으로 분석했다. 단기적 이익을 좇아 안전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장은 비용 절감으로 보이겠지만 일단 사고가 터지면 모두 망하지 않느냐”며 “안전과 관련된 가치체계와 보상체계가 완전히 잘못돼 있다”고 말했다.

관료와 기업의 결탁구조도 문제라고 했다. 섬 주민과 관광객을 상대로 한 탓에 수익구조가 악화되자 규제 무력화에 나선 연안선사와 퇴직 후 일자리에 대비하려는 공무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생긴 구조다. 이 교수는 “항공·원양해운·건설 등 그동안 글로벌 스탠더드에 노출되며 호되게 당했던 영역은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그늘에 남은 분야도 있다”며 “이게 모두 규제와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규제 완화 흐름에도 쓴소리를 내놨다. 이 교수는 “한국의 규제는 일단 전체를 묶어놓은 다음 집행자가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이렇다보니 절대로 양보 못할 규제와 불필요한 규제가 한데 묶여 있어 모두 불필요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총량으로 규제를 줄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