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⑨·끝] “위험!” 사소한 한 통화가 소중한 한 생명 살릴 수도
입력 2014-05-19 02:44
⑨·끝 시민들 작은 관심이 큰 재난 막는다
소방방재청은 1주일 동안 접수된 재난 징후의 위험등급을 정하기 위해 매주 징후정보분석회의를 연다. 통상 20여건의 제보와 언론 보도가 논의된다.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 주민생활 밀접도, 인명피해 가능성, 사회적 파급효과, 위험등급 가중치의 5개 분석지표를 토대로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A~E 등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위험한 A등급(91~100점) 징후에 대해선 긴급 보수 등 응급조치와 사용금지 등 긴급안전조치가 동시에 실시된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은 ‘누구든지 재난 징후를 발견하면 지방자치단체나 긴급구조기관에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재난은 한번 발생하면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예방하려면 시민의 결집된 힘이 절실하다.
◇심각하거나(A∼C등급)=지난해 접수된 징후 중 가장 위험한 등급을 받은 건 붕괴 위험에 처한 서울 은평구의 한 사립고교였다. 별관 외벽이 갈라져 무너질 수 있다는 지난해 8월 국민일보 보도 이후 소방방재청이 분석회의를 통해 ‘경계’ 수준인 B등급을 매겼다. 해당 건물은 바로 옆 옹벽이 지반을 마치 댐처럼 지탱하는 구조였는데 옹벽 곳곳에 금이 가 비가 그친 뒤에도 흙탕물이 새어나왔다. 이미 서울시교육청에서 낮은 안전등급을 받은 상태였지만 개·보수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곧바로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다시 안전점검을 실시토록 했고 결국 지난해 9월 9일 보수·보강작업이 시작돼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월 1일에는 부산시민 노모씨가 “금정구의 한 실외주차장 축대가 파손되고 일부 균열이 발생해 붕괴 위험이 있다”고 구청에 제보했다. 소방방재청 확인 결과 축대는 조적벽돌 및 각종 폐기물을 쌓고 시멘트로 마감한 구조여서 하중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자칫하면 주차장이 언덕 아래로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이 축대에 ‘주의’에 해당하는 C등급을 부여했다. 금정구는 하루 만에 바닥 콘크리트를 철거하고 법면(붕괴를 막기 위해 시설물 밑바닥부터 기둥까지 흙 등으로 쌓은 경사면) 조성까지 깔끔하게 마쳤다.
◇때론 사소할지라도(D∼E등급)=언뜻 보기엔 흔하거나 사소해 보이는 징후도 제보를 통해 안전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지난해 11월 1일 제민일보가 제주도 해안동 초등학교 통학로에 인도가 없어 아이들이 위험하다고 보도했다. 소방방재청은 이 징후에 ‘관심’ 등급인 D등급을 매겨 제주시에 통보했다. 그러자 이 통학로에 차와 사람의 길을 구분하는 안전봉과 어린이보호구역 펜스가 설치됐다. 차량 제한속도 단속도 강화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충북 청주시 공공시설 신축공사장의 건축자재가 스쿨존 인도에 쌓여 있어 아이들이 차도로 등교한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이 D등급 징후가 통보되자 청주시는 불법 도로 점용 여부를 확인한 뒤 12일 만에 현장을 원상복구토록 조치했다.
지난해 11월 ‘자전거 거치대 모서리가 날카로워 아이들이 부딪히면 위험할 것 같다’는 한 시민의 세심한 관찰에 전북 남원시는 거치대 모서리마다 푹신한 ‘안전쿠션’을 설치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 E등급 정보가 얼마나 많은 사고를 예방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시민들이 구청의 세심한 배려를 느꼈을 것임은 분명하다.
같은 달 동대구역 승강장 타일 위로 전기선이 노출돼 감전이 우려된다는 제보(D등급)에 코레일은 3주 만에 승강장 전기선을 전면 정비했다. 역시 같은 달 지반 침하로 인도 보도블록이 어그러지면서 ‘가로등이 넘어질 것 같다(E등급)’는 지적이 제기되자 부산 남구는 5일 만에 가로등주 보수·보강작업을 마쳤다. 지난해 접수된 재난 징후는 위험등급별로 E등급 545건(65.7%), D등급 245건(29.6%), C등급 38건(4.6%), B등급 1건 등이었다.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D·E등급 제보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한번의 재난을 막기 위한 300번의 관심=사소한 징후를 미리 포착해 재난을 예방하는 재난징후정보제보 시스템이 2010년 도입됐지만 제보 건수는 지난해까지 연간 800건 정도에 그치고 있다. 시민 참여율은 4년째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소방방재청은 제보자 전원에게 건당 1시간씩 1일 최대 4시간의 자원봉사시간을 부여하고 제보 등급에 따라 문화상품권을 지급한다. 정보 위험성에 따라선 연말에 정부포상을 주기도 한다.
지난 3월에는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최우수 제보자에게 30만원, 2등 4명에게 각 20만원, 3등 4명에게 각 1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지급했다. 이벤트 이후 제보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최근 들어선 여름철 풍수해를 우려해 주변의 위험한 수목을 제거해 달라는 제보가 쇄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알고 나면 정말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이미 사고가 진행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불편하고 위험한 요소들을 제보하는 힘이 모여 여러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으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