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⑨] ‘1:29:300’ 하인리히 법칙 주민 제보, 참사 막는다

입력 2014-05-19 03:43


2012년 2월 27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 C동 옆을 지나던 주민 박모씨는 경악했다. 바로 옆 콘크리트 바닥이 내려앉아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할 아파트 건물 하부구조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박씨는 남양주시에 전화해 재난징후정보관리관을 찾아 이 내용을 신고했다.

소방방재청 국가재난정보센터는 즉시 현장 분석에 착수했고 아파트 건물 하부의 토사가 유실되면서 지반이 내려앉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달 12일 남양주시는 소방방재청 분석에 따라 오수관로 보수, 지반 보강 및 바닥 포장면 재시공 등의 안전조치를 했다. 신고 한 달 만인 3월 29일 문제가 있던 지대는 완벽하게 보수됐다.

삼풍백화점은 1995년 붕괴되기 전 내벽에 금이 가고 에어컨이 갑자기 꺼지거나 전등이 나가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다. 지난 2월 무너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은 지붕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무시하고 행사를 강행한 탓이었다. 반면 2011년 7월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는 “건물이 흔들린다”는 시민 신고 덕에 2000여명이 긴급 대피하고 안전점검을 벌인 끝에 별 사고 없이 출입이 재개됐다.

전문가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도 이처럼 사전 징후만 제대로 포착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실한 관리기관과 안전관리는 뒷전인 기업 등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시민의 자발적인 신고 의식도 제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초등학생 통학로에 설치된 안전봉, 마라도 여객선 선착장에 세워진 난간, 자전거 거치대의 날카로운 모서리에 입힌 쿠션, 다시 그려진 오래된 횡단보도…. 이 많은 것들이 지난해 시민의 신고로 개선됐다. 지난해 제보와 언론 보도로 수집된 재난 징후 829건 중 786건이 해결됐다.

소방방재청 국가재난정보센터와 각 지방자치단체 등은 2010년부터 ‘재난징후정보제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1번의 큰 재난 전에는 29번의 작은 재난이 발생하고 그 전에 300번 사소한 징후들이 나타난다는(1:29:300) ‘하인리히법칙’에 따라 사소한 정보라도 체계적으로 수집해 위험 요인을 미리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축대·옹벽, 도로·교량·터널, 건축물 등 대형 사고가 우려되는 시설부터 안전관리규정 위반 등 생활 속 사소한 위험까지 시민 누구나 소방방재청과 지자체에 전화나 홈페이지로 제보할 수 있다. 이달부터는 재난안전정보 포털 애플리케이션 ‘안전디딤돌’을 통해 스마트폰으로도 가능하다. 소방방재청은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 게시글 중 재난 징후 관련 단어를 자동 검색하는 ‘크롤링’으로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지난해 수집된 재난 징후 829건을 발생 장소별로 구분하면 교통시설 제보가 266건(32%)으로 가장 많았다. 유형별로는 절반가량인 408건(49.2%)이 미흡한 시설물 유지관리 제보였다. 징후 파악 루트는 주민 제보가 531건(64%), 언론·인터넷을 통한 수집이 290건(35%)이었다. 2010년 이후 총 3301건의 재난 징후가 수집돼 3247건의 조치가 완료됐으며 54건은 분석 및 개선 중이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키워드-하인리히 법칙

미국의 보험사 연구원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가 1931년 만든 법칙이다. 산업재해로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인한 경상자가 29명, 재해를 피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음이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이후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를 넘어 다른 사고와 재난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