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탐사기획 이번에는 제대로(1)] ‘非理 하차’ 재·보선 이젠 그만

입력 2014-05-19 03:50


<시리즈를 시작하며>

지방선거가 실시될 때마다 후보자들은 공정선거와 지역 발전을 약속한다. 유권자들은 이번엔 제대로 된 후보를 뽑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약속과 다짐은 매번 이뤄지지 않았다. 불과 4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일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자료를 입수해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당선자 중 공직선거법 위반과 뇌물수수·횡령 등 유죄 확정 판결, 사직·사망 등으로 그 직(職)을 상실한 사례 262건을 전수 분석했다. 이를 유형별로 나누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된 사례 54건, 뇌물수수·횡령 등으로 피선거권을 상실한 사례 56건, 사직 121건, 사망 31건이다. 사직의 대부분은 대선·총선 출마 등 더 큰 정치적 욕심을 위해 중도 하차한 경우다.

이런 문제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 비용은 809억4800여만원에 이른다. 당선자들의 문제로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다음달 4일 치러질 제6회 전국 지방선거에서 이 같은 사례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선거 탐사기획-이번에는 제대로 뽑읍시다’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0년 당선자 중 ‘職’ 상실 262명 전수분석-

2009년 최병국 당시 경북 경산시장은 시청 공무원 A씨에게 승진을 약속했다. 실제 5급으로 승진하자 A씨는 최 시장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 다른 직원 B씨는 최 시장에게 금품을 건네지 않았는데도 승진했다. 루트는 따로 있었다. B씨는 최 시장의 부인에게 승진 청탁 명목으로 이미 3000만원을 건넨 상태였다. 최 시장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으나 꼬리가 잡혔다. 대법원은 2012년 최 시장 부부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김홍복 인천 중구청장은 2011년 당시 자신의 형제들과 법적 다툼을 벌였던 토지구획정리사업 조합장에게 “형제들에게 환지손실 보상금 13억원을 지급하는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업지구 기반시설 준공 허가를 내주지 않겠다”고 겁을 줬다. 대법원은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송을 제기한 뒤 조정에 응하라고 협박한 점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지방자치가 비리의 검은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인허가권 등 직권을 악용한 비리, 지역 업체와의 유착, 인사 비리 등은 지방자치의 암이다. 만취해 공무원을 때리는 등 자질 논란도 여전하다. 유죄 확정판결, 개인적 사유 등으로 인한 중도 하차는 가뜩이나 정착이 힘든 지방자치제도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2010년 6월 2일 치러진 5회 지방선거에서 3436명(비례대표 제외)이 당선됐다. 국민일보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0년 제5회 전국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실시 사유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 중 262명은 법이 정한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으로 18일 나타났다. 비율로 따지면 7.6%다.

16개 시·도 지사 중 3명이 임기 중 물러난 광역단체장의 중도 하차 비율이 18.8%로 가장 높았다.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비율은 16.7%로 그 뒤를 이었고 광역의원(시·도 의원)은 11.3%를 기록했다. 기초의원(시·군·구 의원)은 144명이 중도 하차해 숫자로는 가장 많았으나 전체 인원이 2512명이나 돼 비율로는 5.7%로 가장 낮았다.

262건의 사례 중 뇌물수수, 공직선거법 위반, 횡령, 금품수수, 사기, 상해 등으로 퇴진한 경우는 56건으로 집계됐다. 검은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사례가 많다.

특히 공직선거법 위반 19건 중 자신의 당선을 위해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된 케이스는 2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7건은 시·군·구 의원들이 국회의원 총선 등 다른 사람의 선거를 돕다 법의 단죄를 받은 경우였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로부터 독립하지 못했으며 지역 보스인 국회의원들이 여전히 기초의원 위에 군림하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사례다.

자칫 방심했다가는 비리로 얼룩진 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유권자들이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이유다.

탐사취재팀=하윤해 팀장, 엄기영 임성수 권지혜 유성열 유동근 정건희 김동우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