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우선순위에서 사라진 민생과 서민] 말로만 민생… 정권 초심은 어디로
입력 2014-05-19 03:08
세월호 참사로 소비가 위축되는 등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대상은 자영업자 등 서민층이다. 경기 위축과 사회적 분열 현상을 감안할 때 민생 체감도가 떨어지는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혁파라는 틀에서 벗어나 ‘말로만 민생’이 아닌 서민 중심의 경제정책으로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핵심 어젠다에서 사라진 민생과 서민=박근혜정부는 출범 초 복지 공약을 중심으로 민생정책을 강조했다. ‘7·4·7’(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로 대표되는 이명박정부의 양적 성장과 달리 질적 성장으로의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만에 민생과 서민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사라졌고 일자리 창출을 이유로 기업 투자 유인 위주로 정책의 중심축이 이동했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경제정책에서 민생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했다. 지난해 3월 ‘2013년 경제정책방향’과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주요 정책과제를 비교해 보면 ‘민생’과 ‘서민’이란 단어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재원마련 대책이 없는 가운데 복지공약도 후퇴했다. 대신 최상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 주체인 기업을 위한 투자활성화와 규제완화가 중요시됐다.
가계살림은 갈수록 팍팍해졌다. 임금은 그대로인데 사회보험료와 같은 고정 지출이 늘면서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은 78만1000원으로 전년(76만원)보다 2.8% 늘어났다. 지난해 평균소비성향(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3.4%로 전년(74.1%)보다 0.7% 포인트 떨어졌다.
◇민생 잘 챙기고 있다는 정부=세월호 참사는 경제 외적인 사건이지만 우리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제는 심리인데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기관 개혁과 규제완화 어젠다는 경제주체들의 차가워진 심리를 데우기에는 괴리감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의식해 정부는 지난 9일 긴급 민생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여행·숙박업 등 일부 업종 지원에 국한돼 무늬만 민생정책이었다는 비판이다. 재정 투입을 상반기에 앞당기는 등 ‘아랫돌 빼 윗돌 괴는’ 수준이었다.
정부는 그러나 민생보다는 규제혁파와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어젠다를 통해 경제활성화를 이루겠다는 기존 경제정책의 큰 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8일 “경기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좀 더 크게 경제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과 민생 대책에 대해서도 정부는 후퇴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연초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모두 민생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날이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가계부채 감경 등 ‘가난한’ 가계를 타깃으로 한 대책 대신 기업 투자가 우선 살아나야 경제가 회복되고 그래야 그 온기가 서민에까지 미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어려운 이들에게 복지를 제공함으로써 일자리를 준다는 역지사지로 접근해야 하는데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면서 복지를 없애버렸다”고 지적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 기업도 가계도 현금을 쥐고 쓰지 않으니까 돈이 돌지 않는다”며 “정부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높이는 등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기업 이익을 가계로 이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