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새겨진 문화와 민족 코드 (1) 브라질] 자유분방한 ‘삼바’ 속에 숨은 흑인 노예의 슬픈 역사
입력 2014-05-19 02:11
브라질의 ‘삼바 축구’, 잉글랜드의 ‘킥 앤 러시(차고 달리기)’,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빗장 수비)’, 스페인의 ‘티키타카(탁구를 치듯 패스를 주고받는 스타일)’….
축구 스타일은 국가마다 다르다. 선이 굵은 축구를 선호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세밀한 축구에 열광하는 국가도 있다.
한 국가의 축구 스타일엔 해당 국가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국민성이 녹아 있다. 각기 다른 스타일로 맞붙는 축구의 ‘이종격투기’는 월드컵을 관전하는 또 하나의 묘미다.
브라질 국민에게 축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종교에 가깝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결승에서 브라질은 이탈리아를 4대 1로 꺾고 사상 최초의 3회 우승을 달성하며 줄리메컵 영구소유권을 획득했다. 당시 에밀리오 메디치 대통령은 화끈하게 ‘임시 공휴 주일’을 긴급 제안했다. 하루로는 부족하니 우승일을 포함해 8일 동안 축구 축제를 벌이자는 의미다. 이처럼 브라질에서 축구는 전 국민이 즐기는 축제다.
브라질 사람들은 자유분방하며 굉장히 낙천적이다. 이러한 성향은 축구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브라질 축구는 화려한 개인기와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패스, 화끈한 슈팅이 특징이다. 펠레, 지코, 호나우두, 호나우딩요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플레이를 돌이켜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축구는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브라질 사람들은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페레이라 감독은 우승을 하고도 해임됐다. 수비적인 축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이탈리아와 연장전까지 0대 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사상 최초로 승부차기 끝에 정상에 올랐다.
브라질에서 즐거운 축구가 각광받는 배경엔 아이러니하게도 슬픈 역사가 있다. 브라질은 과거 앙골라에서 흑인 노예들을 수입했고, 흑인 노예들은 착취당하며 커피농장에서 일했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단한 삶으로 슬픔에 빠져 있던 이들은 어떻게든 즐거워지기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삼바’라는 춤이 탄생했다.
노예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개발했는데, 이것이 브라질 전통 무술인 ‘카포에이라’다. 카포에이라엔 ‘징가(Ginga)’라는 기본 스텝이 있는데 이 스텝은 축구에도 응용됐다. 징가는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지 않으려는 방법’, ‘난관에 맞서는 적절한 몸집’ 등을 뜻한다.
전설적인 미드필더이자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주장으로 활약했던 둥가는 이렇게 말했다.
“일은 공이 하도록 내버려 둬라.”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놀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축구는 승리를 위한 놀이이므로 전략이 필요하다. 놀면서 이기려면 징가가 필요한 것이다. 브라질 축구는 ‘삼바 축구’로 불리는데, ‘징가 축구’로 불리는 게 더 타당한 듯하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 우승 이후 브라질 축구는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의 ‘토털사커’가 등장했기 때문. 토털사커가 세계 곳곳에 빠른 속도로 보급되자 브라질은 당황했다. 창조적이면서도 불규칙하고 돌발적인 징가 축구를 구사했던 브라질 선수들은 두세 명씩 달라붙어 공을 뺏어내는 토털사커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1980년대에 들어서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현대축구를 받아들여 4-4-2 전술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브라질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승했지만 플레이는 다소 보수적이었다. 호나우두와 호나우딩요 등 특급 스타들이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출전했던 카카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는 골을 위한 댄스다.” 브라질이 자국에서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서 삼바 춤바람을 타고 여섯 번째 정상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