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루·간디 가문 세습정치 막 내리나

입력 2014-05-19 04:40

인도의 세습 정치가 종말을 고하는가.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한 후 인도의 현대 정치사를 좌지우지했던 네루-간디 가문이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최대 위기에 놓였다. 네루-간디 가문이 이끄는 집권여당 국민회의당(INC)이 이번 총선에서 건진 의석수는 연방하원 545석 가운데 고작 44석이다.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은 과반(272석)을 뛰어넘은 282석을 차지했다.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를 비롯해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외손자 라지브 간디 등 3명의 총리를 배출한 INC로서는 참패도 이런 참패가 없다. INC가 이전에 기록한 최소 의석은 99년 총선 때 114석이었다.

당장 유세를 이끌어온 라울 간디 INC 부총재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라울은 라지브의 아들이다. 또 라지브의 아내이자 라울의 어머니인 소냐 간디는 INC 총재를 맡고 있다. 인디아투데이는 17일(현지시간) INC 지도부를 인용해 “소냐와 라울이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19일 당 고위 간부회의에서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힐 수 있다”고 전했다.

소냐와 라울도 전날 패배를 인정했다. 소냐는 기자회견에서 “이길 때가 있으면 지기도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라울은 “내 책임이 크다”고 하면서도 옅은 미소를 지어 구설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수십 년간 인도를 호령했지만 부패와 높은 물가, 경제 둔화 등으로 민심이 등을 돌렸다”며 “지지층만 믿고 선거 전략이 부재했던 것도 패인”이라고 지적했다.

BJP가 단독 정부를 구성할 정도로 압승했기 때문에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은 앞으로 급속히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10년간 네루-간디 가문의 ‘꼭두각시’ 역할을 했던 만모한 싱 인도 총리도 이날 사퇴했다.

하지만 네루-간디 가문이 쉽사리 몰락할 거라 단정하긴 이르다. 인도에선 혈통 중심의 세계관이 강해 정치에 미치는 가문의 영향력이 크고, 네루-간디 가문 없이 INC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91년 라지브가 유세 도중 폭탄 테러로 숨진 후 INC는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다가 98년 소냐의 정계 입문으로 다시 살아났다. 때문에 라울의 여동생 프리얀카 간디가 INC에서 새 리더로 부상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총선에서 기록적인 압승을 거둔 BJP는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를 중심으로 정부 구성에 박차를 가해 빠르면 21일 새 정부가 출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인도 언론은 전망하고 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