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美 흑백 통합교육 60년… “숨겨진 차별·편견 여전”
입력 2014-05-19 02:50
미국 대법원이 공립학교에서 인종에 따라 학교를 따로 배정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을 내린 지 17일(현지시간)로 60년이 됐다. 1951년 여덟 살 흑인 소녀의 아버지 올리버 브라운은 캔자스주 토피카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3년 만인 54년 5월 17일 미 대법원은 ‘공립학교에서 인종분리는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이후 겉보기에 미국에서 인종문제는 ‘과거사’가 됐다. 6년 전에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탄생했다.
하지만 흑인인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이날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흑인대학 모건주립대 졸업식에서 가진 축사를 통해 인종차별 문제를 다시 강하게 제기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된 미 프로농구 LA클리퍼스의 도널드 스털링 구단주 등의 인종차별 발언을 암시하면서 “이러한 인종 편견적 발언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은 통탄할 만하지만, 이것들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의 진정한 목표물은 아니다”고 말했다. 홀더 장관은 “진정한 위협은 보다 미묘하고 깊은 곳에 있다”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터넷 등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논쟁보다도 숨어있지만 더욱 심각한 피해를 주는, 체계적인 편견과 차별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홀더 장관이 언급한 ‘보다 숨겨져 있지만 체계적인 차별’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미국의 형사사법제도를 우선 꼽을 수 있다. 미 ‘형선고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유사범죄를 저질렀더라도 흑인 남성들은 백인들에 비해 20%나 긴 형량을 받았다. 코카인 사범 처벌에 있어서도 흑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덩어리 코카인과 백인들이 사용하는 분말 코카인 사이에 형량 차이가 상당히 크다. 일선 경찰들의 차별적인 법집행에 대한 흑인들의 불만도 매우 높다. 불심검문 대상자가 백인보다 흑인이 훨씬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인권그룹 보고서는 심지어 인종통합교육마저도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흑인 어린이가 단 한 명도 없었던 남부 한 학교의 경우 대법원 판결 이후 급속하게 증가해 43.5%에 달했다. 그러나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2011년 흑인 어린이 비율은 23.2%로 급감했다. 이 같은 현상은 20년 동안 백인과 흑인 간 경제력 차이가 더 벌어져 ‘거주지 분리’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홀더 장관의 발언에 대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근래 들어 잇따르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겪으며, 그동안 자제해 온 인종문제를 정면에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또 연설은 사전에 백악관과 조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도 전날 인종차별 철폐를 위해 힘쓰는 변호사들과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관계자, 당시 소송을 이끌었던 캔자스주 토피카 교육구 학부모들의 친인척 등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모든 형태의 편견이나 차별을 뿌리 뽑기 위한 싸움을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미셸 오바마 여사는 토피카를 찾았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이 17일 이 지역 고교 졸업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학부모 등의 반발로 무산됐다. 미셸 여사는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피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검문을 당하고,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하거나 다른 부류의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