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통 느끼지 못하는 심근경색증 많다
입력 2014-05-19 02:18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며칠 전 새벽 50대 중반 남성이 응급으로 ‘관상동맥 확장수술’을 받았다. 그는 목이 답답하고, 약간의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처지였다. 당시 특별히 가슴이 아프거나 답답한 증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검사 도중 돌연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의식을 잃었다. 급성심근경색이 온 것이다.
이튿날 오후, 한 60대 여성 환자가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녀는 며칠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고 식은땀이 나며 상복부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심전도 검사결과 뜻밖에도 심근경색증이 진행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진은 즉각 관상동맥 확장수술을 시행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당연히 가슴이 아플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마디로 ‘흉통=심장병’이란 등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두 사례처럼 치명적인 심근경색증임에도 흉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소화불량이나 귓병같이 전혀 다른 질환을 의심해 엉뚱한 치료로 시간을 끌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어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급성심근경색 환자 25%는 흉통 없어=급성심근경색 환자 중 ‘뻐근하다’ ‘체한 것 같이 답답하다’ ‘고춧가루를 뿌린 것 같다’ 등의 전형적인 흉통 증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는 4명 중 1명꼴로 나타난다.
한양대병원 심장내과 김경수 교수는 “대개 목 부위가 답답하고 팔(특히 좌측)이 아프다거나 속이 더부룩하다는 이유로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을 전전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특히 고령이거나 당뇨 환자일수록, 또 여성일수록 더 많이 일어난다.
심근경색의 전형적인 증상은 흉골(가슴뼈) 뒤, 양쪽 가슴, 명치와 상복부 등에서 심하게 조이는 듯한 느낌이나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나 어깨, 양쪽 상박(팔꿈치 위쪽), 목, 견갑골(어깨뼈) 사이로 퍼지는 것이다. 통증은 짧게는 30분에서 1∼3시간 동안, 길게는 1∼3일간 지속되기도 한다.
급성심근경색증은 심장에 혈액과 영양분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혈전(핏덩어리)에 의해 갑자기 막힘으로써 심장근육이 괴사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렇게 되면 심장이 멎어 병원 응급실에 후송되기 전에 약 30%, 응급실 도착 직후 약 10%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급성심근경색증이 발생하면 5분 이내에 심장마사지 등 응급처치가 이뤄져야 한다. 관상동맥이 예기치 못하게 막히는 원인은 주로 죽상(粥狀)동맥경화 때문이다. 죽상동맥경화증은 혈관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내막에 콜레스테롤 침착 등의 이유로 죽처럼 묽은 ‘죽종’이 형성되는 증상이다. 동맥경화는 혈관의 노화 외에도 고혈압, 고지혈증, 동물성 지방 위주의 식습관, 흡연 등에 의해 촉진된다.
◇4∼6시간 내 응급처치가 생사를 결정=치료를 위해선 막힌 관상동맥을 다시 뚫어주어 괴사 위기에 몰린 심장근육에 빨리 피를 공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더 이상의 심근경색 진행을 막고 심장기능도 보존할 수 있다. 관상동맥의 혈류를 재개시키는 일이 늦어질수록 심장근육은 점점 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치명적인 심근경색증을 극복하고 예전처럼 정상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골든타임은 발병 후 5분 이내다. 어떻게든 생명을 건지는 데 의미를 둔다 해도 발병 후 3시간을 넘기지 않고, 막힌 혈류를 재개시켜야 한다.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노태호 교수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을 낮추려면 핏속에 콜레스테롤(기름진 지방)이 많아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며 술·담배와 과도한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비만, 고혈압, 당뇨 등 혈관의 노화와 동맥경화를 촉진하는 대사증후군도 피해야 한다.
심장건강은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올바른 식습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염분 섭취를 제한하고,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 트랜스지방 섭취를 줄여야 한다, 대신 식물섬유소를 충분히 섭취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권장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