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일본 신복규 선교사] 노숙인에 감동 준 이발봉사… 취직하자 고마웠다며 감사 헌금
입력 2014-05-19 02:07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 13:8)
최근 일본 도쿄 우에노공원에서 노숙인 이발사역을 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떤 일본인이 다가와 “목사님의 직업은 이발사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져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마 자기가 보기에 노숙인들의 머리를 깎아주는 모습이 프로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즐겁고 좋다. 내가 처음 이발사역에 뛰어든 것은 머리를 깎으려는 사람은 많은데 봉사자가 적어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번도 머리를 깎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전동 이발기를 사용하는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을 했다. 처음 머리를 깎아줄 때는 어색하고 잘 되지 않아 얼굴을 찌푸리고 아프다고 눈을 흘기는 노숙인도 있었다. 겨울철에는 머리를 감지 않아 이발기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뭉친 사람들도 많았다. 그럴 때는 먼저 가위로 머리카락을 대충 잘라내고 기계로 깎아주었다.
홈리스 생활을 하면서도 멋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는 머리를 깎아 준 뒤 수염이 하도 지저분하니 다듬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화를 버럭 내면서 “왜 수염을 자르려고 하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물어보지도 않고 내 생각으로 깨끗하게 해 주려다가 오히려 낭패를 당할 뻔했다. 어떤 사람은 식사는 안 하고 머리만 깎으려고 줄을 선다.
어느 날 공원관리소에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려 위생상 좋지 않으니 이발을 하지 말라. 계속 이발을 한다면 우에노공원에서 홈리스 사역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할 수 없이 중단을 했는데 지난 3월부터는 바람 부는 날 외에는 머리를 잘라줘도 괜찮다고 허락해 다시 봉사를 하고 있다.
이발사역을 하는 것은 올리브 사토기도원에서 일하는 하루야마씨 같은 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 우에노에서 홈리스 생활을 했다. 그는 내가 머리를 깎아줬던 것을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해와 올해 신년기도회 때 두 차례 10만원가량을 헌금했다.
나는 매주 화요일 우에노공원과 매주 목요일 요요기공원에서 홈리스 급식 전도사역을 하면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 끼 식사 때문에 모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중에는 말씀을 사모해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1억2665만9000여명의 일본인 가운데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주라고 전파하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교회는 물론 이곳에도 오지 않으니 복음을 듣지 못한다. 하지만 복잡한 사정으로 홈리스 생활을 하지만 오히려 복음을 접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내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흔히 일본을 ‘선교사들의 무덤’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러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다짐이 있다. 그런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가자는 것이다.
일본은 개신교가 들어온 지 1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복음화율이 1%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크리스천 인구 1%의 벽을 깨는 것이 일본 교계의 목표다. 많은 분들이 연구하고 분석하지만 확실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벽을 깨기 위해선 반드시 준비된 복음전파자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섬기던 일본 수미다교회에는 100세인 목사님이 계셨다. 교회를 개척하고 1993년 100세가 될 때까지 현역으로 목회를 하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선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들이 2∼3개 교회를 순회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다. 그만큼 목회자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일본에 목회자가 없는 무목(無牧)교회가 800∼10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안타깝지만 날이 갈수록 무목교회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에는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목회지가 없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분들이 눈을 돌려 일본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한국 선교사 중 일본 현지교단에 들어가 인정을 받으며 사역을 잘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다. 준비만 되면 얼마든지 현지교단과 협력해 선교활동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전에 총신대 총장이셨던 고 김의환 목사님께서 일본 선교대회에 오셔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당신은 일본 선교사로 오시기 위해 애를 쓰셨는데 비자를 받지 못해 결국은 못 오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일본선교에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해 주셨다. 또한 ‘선교지에 사는 것만으로도 선교하고 있다’며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선교사들이 많았다. 15일씩 비자를 받고 1년 동안 자비량으로 선교하신 분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자격만 갖추면 선교사 비자가 나온다.
일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유롭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제한된 이슬람 지역처럼 숨을 필요도 없다. 목숨의 위태로움도 없다.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복음 전파가 개방된 자유로운 나라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0장 2절에서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땅에 많은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이 땅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내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미국이나 서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이 참 많았다. 그들은 달러의 위력으로 넓은 집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제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나도 그분들과 교제하며 일본선교의 꿈을 키웠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달러 가치가 많이 떨어져 이곳에서 생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많은 재정을 투입해도 그만큼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은 한국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와 있고 중국과 필리핀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일찍이 일본에 선교사로 왔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일본에 왔다가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분들이 있다. 일본에서 태어난 2·3세들도 복음전도자가 돼 사역을 하고 있다. 특별히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는 분 중에 알츠하이머병 증세를 보이는 고령자도 있다. 일본에 22세 때 왔는데 지금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고 남편에게 ‘내가 몇 살이냐’고 묻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질병을 앓고 계시지만 그래도 기회가 있으면 복음을 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도전을 받는다.
1970년대에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다가 은퇴하고 활발하게 선교사역을 펼치는 선배 선교사님들도 있다. 그분들은 70세가 넘어 은퇴했지만 후배들이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도록 세미나도 열고 선교정보도 제공해 주신다. 후배 선교사들에게 평생 선교의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계신 것이다.
일본 신복규 선교사
◇신복규 선교사 △1953년생 △예장 합동 총회 세계선교회(GMS) 소속 △1988년 일본 입국 △총회신학원, 일본 기독교 단기대학, 동경기독교신학교 졸업 △1992년 일본 선교사 파송, 일본 수미다교회 협력선교사 △1995년 동경성광교회 개척 △현재 일본 노숙자 급식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