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상갓집에서 도둑질하려는 이들

입력 2014-05-19 02:23


“지상과제인 재난안전 강국 건설에 정권퇴진 주장은 아무런 도움 안 돼”

한 달여 동안 많은 시신이 수습되긴 했으나 통곡의 바다는 여전하다. 적지 않은 가족들이 아직 팽목항에서 때로는 울부짖으며, 때로는 멍하니 검은 바다만 응시하고 있다. 싸늘한 주검이라도 한 번 안아보고 싶다는 일념(一念)이 전부다. 상당수 국민들 역시 ‘나도 죄인’이라는 자괴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을 털고 재기(再起)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게 아니다. 우리에겐 분명한 지향점이 생겼다. 재난안전 강국. 이미 숨지거나 지금도 바닷속에 있을 ‘세월호 아이들’ 그리고 구조자들이 산 자들 손에 쥐어준 지상과제다.

머지않아 정부와 정치권,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국가를 이 지경으로 추락시킨 데 책임이 큰 관료사회와 정치권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국가를 리모델링하기 위해선 이들의 식견과 권한을 활용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범시민단체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느 집단보다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국민 다수의 바람이다. 그리고 거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게 ‘죄인’인 국민들의 심정 아닐까 싶다.

절망의 바다를 건너 희망의 바다로 옮겨 가려는 흐름은 진도 앞바다와 경기도 안산, 서울 등지에서 하나하나 구체화될 듯하다. 세월호를 영원히 잊지 않겠으며, 기본을 무시해 수백 명이 한꺼번에 희생되는 참사가 결코 재연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들이 속속 가시화될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는 너와 내가 따로일 수 없다. 온 국민이 하나가 돼야 한다. 비루한 일부 관료들의 저항 등 난관도 예상되나 국민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 대열에서 이탈해 역행하려는 이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선동의 소재쯤으로 삼으려는 세력이 그들이다. 세월호에 탔다가 숨진 학생들을 4·19혁명과 6·10민주화항쟁의 기폭제가 된 김주열군과 박종철군에 비유하면서 ‘박근혜정부의 무능에 의한 타살’이라는 동영상을 제작한 노조, 수업시간에 ‘국가정보원이 이미 시체를 다 찾아놓고 시간이 지나면서 찾은 것처럼 구라(거짓말)를 치려고 한다’고 말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고등학교 기간제 여교사, 팽목항에 ‘이런 대통령은 필요 없다’는 유인물을 뿌린 노동단체, 세월호 유족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OUT’만을 외치다가 유족들에 의해 쫓겨난 외부 인사 등등.

사고 수습 과정에서 우왕좌왕한 박근혜정부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그들 언행이 강한 분노의 표현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순수한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표현은 악의적이고, 논리적 비약은 심하다. 어떻게 해서든 정부와 나라에 대한 증오를 확산시켜 대한민국의 근간을 뒤흔들려는 의도마저 엿보인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마저 선을 긋고 있다. 진상조사를 원할 뿐이지,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자식 잃고 제정신 아닌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그럼에도 ‘정권 퇴진’이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집회는 지속되고 있다. “박근혜가 죽였다”는 말도 다반사다. 되돌아보면 천안함 폭침사건 때나 최근 북한 무인기 파동 때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다. 북한 소행이라는 과학적인 결론도 거짓이라고 일축한 채 정부에만 화살을 돌리는 황당한 세력들이 있었다. 일부는 북한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온 국민이 비통해하는 세월호 참사를 놓고서는 다를 것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가졌지만 허사였다. 이는 재난안전 강국 건설을 더디게 할 뿐 아니라, 유족들을 두 번 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반 시민들의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다. 한 원로는 ‘상갓집에서 도둑질하는 격’이라고 일갈했다. 자제돼야 한다. 계속 사회혼란을 부추기려 든다면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질 것이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