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경호팀에 둘러싸인 대통령

입력 2014-05-19 04:42


전 세계적으로 국가 정상 경호로 유명한 나라가 두 곳 있다. 바로 미국과 한국이다. 방문지마다 많은 인원이 동원되고 치밀하게 경호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별도의 경호기관이 있어 전문적인 경호관을 육성하는 것도 두 나라가 비슷하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섰을 때 두 국가가 펼치는 경호작전은 다른 나라들이 감탄할 정도라고 한다. 전용기의 항로부터 현지 도시에서의 동선까지 사전에 철저히 분석하고, 미리 경호관들을 보내 대통령의 안전을 확보한다.

이처럼 공통점이 많은 한·미의 경호에서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다. 대통령이 언론에 노출됐을 때의 모습이다. 미국 대통령이 경호관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이는 듯 보이는 데 반해 우리 대통령은 마치 경호팀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송과 신문에 등장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대통령 바로 뒤에 항상 똑같은 얼굴 하나가 등장하는 것이다. 바로 박흥렬 경호실장이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행사에 참석하러 갈 때든 국회를 방문하는 경우에도 경호팀은 예외 없이 카메라 앵글에 잡힌다.

박 실장만이 아니라 역대 청와대 경호실장들이 다 그랬다. 유사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 대비해 대통령과의 지근거리를 절대 버리지 않는 것, 그게 경호실장의 첫 번째 임무였다. 직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장관급 기구인 경호실을 차관급 경호처로 바꿨을 때도 이는 변하지 않았다. 노무현,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모든 역대 정상들이 경호실 수장을 바로 옆에 두는 전통을 이어갔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북극 그린란드를 방문해 쇄빙선을 탄 채 연안을 항해할 때였다. 트롤리 어선을 탄 채 손을 흔드는 그린란드인들 사이에 익숙한 동양인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우리 경호관들이었다. 쇄빙선이 향하는 곳마다 특수 체온유지복과 잠수복을 착용한 청와대 경호관들이 작전을 펼쳤다. 동행했던 덴마크 왕세자 측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경호관들을 만날 때마다 왕세자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고 한다. 왕세자 측의 경호원은 단 두 명뿐이었다.

지난달 서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옆에 미국 측 경호요원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설사 있었다고 해도 경호 담당자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 수 없게 했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끔 미국 언론에 백악관 생활을 공개할 때가 있다. 오벌 오피스에서 회의를 하거나 집무실 책상에 앉은 모습 같은 장면을 언론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 장면에는 대통령과 어깨동무를 하거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대통령을 친구처럼 대하는 백악관 보좌관들의 모습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는 미국인들은 대통령을 ‘아주 높은 데 사는 근엄한 어른’이라고 여기기보다 자기네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게 된다. 아주 바쁜 업무를 제쳐놓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도 미국인들은 “당연히 대통령도 사람인데 쉬기도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 국민들은 이런 미국적인 대통령관(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대통령이라면 휴가도 없이 일해야 하고, 모든 국정 현안에 전부 책임을 져주길 바란다. 초능력자가 아닌 다음에야 대통령이 사생활을 일부러 없애야 하고 모든 걸 다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형성된 데는 청와대의 관행도 일조한 게 아닐까. 항상 경호실장과 동행하는 대통령, 늘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가 국민들 머릿속에 그려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