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남성현] 국가란 무엇인가

입력 2014-05-19 02:33


가장 근원적인 인간 욕망은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성경도 살고자 하는 욕망은 ‘거의’ 절대적으로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든 후 내린 첫 번째 말씀은 ‘생육하라’는 명(命)이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 본능이 아니라 ‘살라(生)’는 ‘명(命)’, 즉 하나님의 명령이다.

바로 이런 ‘살라(生)는 명령(命)’ 때문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분명해진다. 국가란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약속의 합의체다. 국민을 해치거나, 국민의 생명이 위험한데도 죽도록 방치하거나, 외부의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못하면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조직에 권력집단은 있겠지만 진정한 정의는 없다.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신법(神法)인 ‘생(生)의 명(命)’을 경시하는데 여타 무슨 정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4권에서 정의가 없는 국가권력을 가리켜 강도떼나 다름없다고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살라는 명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세월호의 비극은 생명을 보호하도록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의 면면을 낱낱이 해부해 주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해경이 선체에 진입했더라면 300여명 전원을 구조할 수도 있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침몰하는 배를 버리고 제일 먼저 도망가는 선장의 사진은 언론의 여기저기에 도배되고 있다. 생명 구조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았으되 위험을 회피한 해경, 마지막 한 명까지 구조해야 하되 속옷 차림으로 가장 먼저 배와 생명을 버린 지도자.

이런 모습에 임진왜란 때 서울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나, 6·25 남침 때 600년 고도(古都)를 버리고 도망간 이승만과 주변 인물이 문득 떠오른다. 현장 책임자들의 약속 유기는 물론이거니와, 세월호의 그때가 있기까지 벌어진 모든 부실과 편법과 불법은 우리사회 전반을 ‘생(生)의 명(命)’에 맞서는 하나님의 대적으로 낙인찍는 것만 같다. 덤으로 과거사까지 악몽으로 덮쳐온다.

정부는 사고원인, 사고시각, 교신내용, 항적, 급격한 변침의 이유 등에 대해서 모두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동안 사고개요에 대해서도 꾸준하게 의혹이 제기되어 왔다. 더 이상 의혹이 계속되지 않도록 정부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탐욕 절제하며 바르게 살아야

국가는 무엇보다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약속의 합의체다. 세월호의 비극은 일차적으로 현장 책임자들과 관계기관들의 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체계를 허용하고 용납해 온 우리 자신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살아야 하는 것이 절대적 명(命)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우리를 추궁한다. ‘선하게’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어서 더 많은 걸 부둥켜안고자 한다. 살아야 하는 게 절대적이지만, 욕심을 다스리면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젠 내 욕구를 채워 달라는 기도를 내려놓을 때도 되었다. 오히려 어떻게 나눌지, 어떻게 욕망을 비워(빌 2:7) 그리스도를 닮아 갈지 기도할 때다. 이성으로 탐욕을 억제해야 세월호의 비극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시편 85편 10∼13절 말씀이 새롭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 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표준새번역) 정의로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려주어야 하지만, 사랑으로 물질을 넘어서야 한다. 정의가 없다면 사랑은 요란한 꽹과리에 불과하다. 또 사랑이 없으면 정의도 실현될 수 없다. 사랑과 정의를 통해 주님께로 통하는 길을 닦자.

남성현 한영신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