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창준 (9) 나만의 경영전략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려라”
입력 2014-05-19 02:06
1977년 ‘제이킴 엔지니어스’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상·하수처리장 등 도시개발프로젝트를 설계하는 회사였다. 중소기업청에서 지원받은 10만 달러에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을 합쳐 로스앤젤레스 근처 다이아몬드바 시에 사무실을 얻어 간판을 걸었다.
직원이라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서 한 명뿐. 초라한 출발이었지만 낮에는 사업계약을 따내느라 동분서주하고 밤이면 주문받은 설계를 하느라 도면과 싸웠다. 다행히 일거리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미국 서부 6개주에서 일할 수 있는 면허증을 얻은 뒤에는 도저히 혼자서 일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설계 직원을 채용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무려 150명의 직원을 두게 됐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나만의 경영전략을 세웠다. 첫째, 미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린다. 둘째, 미국 사회의 관습과 불문율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 어떤 경우라도 경영자와 사원의 한계를 지킨다. 넷째, 사원 모두가 내 회사라는 자긍심을 갖도록 애를 쓴다. 제이킴 엔지니어스는 설립 10년 만에 설계비로 연매출 1000만 달러를 올릴 정도로 놀랍게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의 500대 설계회사 중 하나가 됐다. 미국 서부지역에만 여덟 군데에 지사를 설립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나는 도시개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에서는 성공한 사업가로 나를 소개했고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도 들어왔다.
다이아몬드바 시의 전망 좋은 언덕배기에 실내 수영장과 테니스코트가 있는 좋은 집도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또 다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오래된 욕망과 맞닥뜨려야 했다.
‘언젠가는 이 도시를 이끄는 시의원에 도전해 보리라.’ 2년 동안 이웃 도시인 샌디마스시의 도시계획자문위원장으로 봉사하면서 그런 막연한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의외로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신흥 도시인 다이아몬드바 시의 두 번째 시의원 선거가 다가왔는데 초대 시의원 셋 중 한 사람이 주 상원의원에 출마하느라 사퇴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가슴이 벌렁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도전해 봐야지.’
하지만 시의원 출마가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안개처럼 피어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설계책상 위에 A4용지를 펼쳐 놓고 펜을 들었다. 종이의 반을 접어 한쪽엔 ‘유리한 점’이라고 쓰고 다른 한쪽엔 ‘불리한 점’이라고 썼다. 그리고 내가 시의원에 출마했을 경우, 나의 장점과 단점을 각각 써내려갔다. 나를 객관화시켜 본 것이다. 그랬더니 불리한 점보다 유리한 점이 더 많았다.
‘시의원에 출마하리라.’ 막상 결심을 하고 나자 모든 게 단순해졌다. 다이아몬드바 시에 대해 공부했다. 지역도서관에 가서 시의 역사와 주민분포, 재정상태 등에 대한 자료를 모조리 찾아 읽었다. 인구 8만명 정도의 다이아몬드바 시는 독립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신생도시였다.
본래 도시가 새로 생기면 4년 안에 도시 전체의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하는데 내가 시의원이 되려고 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으로 다이아몬드바 시를 짓고 허물고를 반복했다.
출마를 선언하고 나서 발이 닳도록 나를 알리고 다녔다. ‘아, 주민의 85%가 백인인 이 도시에서 과연 그들이 나를 대표로 세울 것인가.’ 착잡한 마음이 불쑥 찾아들 때마다 나는 애써 잊으려 했다. 사람들은 어차피 떨어질 후보로 단정해버린 듯 나한테 무관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를 알리고 또 알렸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을 지경이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