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이색 직원사랑] 세심한 관심에 뭉클… 애사심·자부심 쑥쑥
입력 2014-05-17 02:42
“기사님이 친절하게 공항까지 데려다 주시고. 결혼식 날 긴장해서 피곤했는데 차가 고급이어서 그런지 아주 편하게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와이프가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최근 결혼한 은행 직원의 감사 인사에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은 대뜸 “타보니까 어때? 회장할 만하겠지”라며 농담을 건넨다.
이 회장의 승용차 에쿠스는 주말마다 직원들의 ‘웨딩카’로 변신한다. 지난해 취임 이후 이 회장은 우리은행 직원뿐 아니라 환경미화원, 청원경찰 등 계약직 직원들도 주말에 은행 본점 예식장을 이용하고 이 회장 승용차를 웨딩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올 상반기까지 웨딩카 예약이 다 찰 만큼 인기가 높다.
이 회장은 16일 “나는 괜찮지만 운전사가 주말마다 세차하느라 고생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한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이 회장에 대한 그룹 임직원들의 신뢰는 상당하다. 38년간 우리은행 한 회사에 몸담은 점도 이유이지만 격의 없이 직원을 대하는 인간미에 세심한 배려까지 더해진 결과다. 소탈하고 농담을 즐겨 주변에 따르는 직원들이 많아 임직원들은 그를 ‘따거(大哥·큰형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회장은 특히 직원들의 상(喪)을 꼼꼼히 챙긴다. 특히 처가상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가에 사위가 일하는 곳의 사람들이 찾아오면 큰 힘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2011년 이 회장이 우리은행장으로 취임한 직후 한 직원의 상가를 방문했는데, 정작 해당 직원이 소속된 부서의 임원들이 보이지 않자 다음날 임원회의에서 직접 그 임원에게 험한 소리를 하며 꾸짖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해 만년 꼴찌이던 우리은행 여자농구단이 7년만의 통합챔피언 등극에 1승만을 남겨두었을 때다. 경기 바로 전날 갑작스레 모친상을 당한 전주원 코치의 상가를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직원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곁에 있어줘야 한다는 이 회장의 원칙이 임직원들이 그를 큰형님처럼 생각하는 이유인 것이다.
감성 등 소프트 요소가 중시되는 지식산업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기업 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문화와 성과 간 상관관계가 커진다는 조사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의 생각도 변하고 있다. 성과지향주의, 신상필벌 등으로 대변되는 기업문화 대신 직원들이 자부심, 애정을 갖고 일하는 문화로 바꾸기 위해 ‘세심 경영’을 실천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리더십은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끌려오게 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특히 상명하복(上命下服) 식 리더십을 지양한다. 임직원들을 CEO의 열렬한 팬으로 만들어야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 회장이 2006년 하나대투증권 사장직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증권업을 모르는 은행 출신이 사장으로 왔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그럴수록 직원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사내 행사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당시 유행하던 ‘마빡이’ 춤을 추며 직원들과 어우러졌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직원들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8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자신의 방 앞에 ‘Joy Together’라는 팻말을 붙였다.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오라는 취지에서다. 또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버킷리스트(죽기 전 해야 할 일을 적는 것)’ 작성을 권유했다. 김 회장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가족과 대화시간 늘리기’ 등 지금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계획을 버킷리스트로 잡으라고 조언했다.
이제 매년 1만여명이 모이는 시무식에서 직원들은 김 회장이 이번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를 궁금해 한다. 회장 취임 후 첫 번째 행사였던 지난해 1월 그는 색소폰을 들고 나타났다. 이전까지는 만져본 적도 없었지만 연습에 매달려 노사연의 ‘만남’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인수한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를 담았다. 올 1월 행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룹의 새 비전 발표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킨 건 김 회장의 꽹과리 연주였다. 사물놀이패를 이끄는 상쇠 역할을 자처했다. 김 회장의 소탈함과 배려는 외환은행 인수 작업을 마무리하고 ‘시즌 2’를 시작한 하나금융의 현 상황에서 필요한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주하 농협은행장은 ‘금융업은 사람장사’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일하고 사무실 분위기가 좋아야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고, 사업실적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은행 내에서 ‘옆집 아저씨’로 통하는 김 행장은 직원들이 모인 자리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편이다. 특히 회식자리에선 직원들이 어려워할까 봐 가급적 업무 얘기는 하지 않는다. 대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역사, 문학, 철학 얘기를 나누다 보면 웃음꽃이 피고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외부 일정으로 이동 중에도 수시로 근처 영업점을 방문해 지점장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격려해준다. 아침 출근길엔 매일 두 명 정도의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 얘기를 듣고 있다.
교통안전공단 정일영 이사장은 지난해 1년여간 직원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책으로 엮었다. ‘우리들의 꿈과 마음이 담긴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정 이사장이 내부통신망을 통해 매주 직원들에게 보낸 ‘CEO 희망편지’라는 이메일과 그에 대한 직원들의 답장을 정리한 것으로, 직원들의 수많은 사연이 담겨있다. 정 이사장이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한 2011년 11월은 공단이 인사비리로 언론의 뭇매를 맞으며 창립 이래 최대 위기를 겪던 시기였다. 그는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조직의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전국에 흩어져있는 1200여명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서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메일이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이 보낸 이메일에는 그의 경영철학에서부터 어린시절 추억, 따뜻하고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한 조언, 사회의 어려운 분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진솔하고 소박한 어조로 풀어낸 공단 안팎의 소식이 담겨있다. 이메일에 대한 답장만 수백통에 달해 또 그에 대한 답장을 쓰기 위해 일부러 업무시간을 할애한다는 정 이사장은 책이 발간된 이후에 직원들로부터 “제 글이 실려 있으니 마치 저를 위한 책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한 명이 아닌 ‘이사장 정일영·직원 일동’이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