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눈물] 권력의 중심에 선 그들이 운다… 그 눈물의 의미는

입력 2014-05-17 02:41


정치인과 눈물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정치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슬프거나 기쁘거나 또는 분노하거나 미안할 때 운다. 이런 경우 정치인의 눈물은 솔직함의 표현이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위라는 점에서 눈물은 정치의 기술이기도 하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할 만한 비열하고 거짓된 눈물이 종종 나온다. 그래서 정치인이 제대로 울면 표를 얻지만, 잘 못 울었다가는 두고두고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그래도 정치인은 운다. 정치인에게는 본인의 부고 빼고는 뉴스에 나오는 게 좋다고 하지 않던가.

◇정치인, 그들은 왜 울었을까=최근 며칠 여의도 정계에서 화제가 된 것 중 하나는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눈물이다. 7선의 정 전 의원은 지난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자 선출대회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막내아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국민정서가 미개하다”고 발언한 것을 사과하면서 펑펑 울었다. 정 전 의원은 “제 아들의 철없는 짓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막내아들 녀석을 너그럽게 용서해 달라”고 호소했다. 갑작스러운 눈물을 지켜본 사람들은 “정치 인생을 접을 뻔한 복잡한 심경이 반영된 통한의 눈물”이라는 옹호와 “선거를 겨냥한 철저히 계산된 쇼”라는 비판 등으로 엇갈렸다. 진실은 정 전 의원 본인만이 알겠으나 어찌됐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 정치인의 낯선 눈물에 어떤 사람들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원내대표 경선장에서 눈물을 비쳤다. 박 원내대표는 정견발표 도중 세월호 침몰 사고 인근인 진도 팽목항에서 본 ‘한번만 안아보자. 보고 싶다 아가야’라는 안타까운 글귀를 소개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저도 눈물 많은 여자”라며 부드러운 감성에 호소하기도 했다. 평소 여전사라고 불릴 만큼 강한 이미지를 가졌기에 박 원내대표가 이날 흘린 눈물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진 않았다. 눈물 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내대표 선거에서 낙승했다.

대통령 혹은 유력 대선후보들의 눈물은 선거의 판세를 바꿔놓기도 한다. 여야를 통틀어 최근 10년 동안 가장 유명한 눈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눈물과 박근혜 대통령의 2004년 눈물을 꼽을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눈물을 흘리는 TV광고로 유권자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존 레넌이 부르는 ‘이매진(imagine)’이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방영됐고, 이후 대통령 당선에 밑거름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전멸위기를 눈물로 구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코너에 몰리자 박 대통령은 정당 대표 TV연설을 통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 달라”며 눈물의 호소를 해 121석을 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0년 천안함 영결식장에서 추모 연설 도중 눈물을 흘렸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대성통곡했고,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은 18대 대선 당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고난 뒤 영화관에서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생각나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2012년 11월 대선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문 의원과 야권 단일 후보 자리를 놓고 한 치의 양보 없이 치열하게 싸웠던 터라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의 사퇴 눈물은 국민들에게 ‘아름다운 단일화’가 아닌 ‘기성 정치권에 대한 새 정치의 좌절’로 읽히면서 야권 대선 패배의 한 가지 이유가 됐다.

◇울어서 또는 웃어서 역풍 분 사람들=김영삼정부 시절 황산성 환경처 장관은 ‘울보 장관’이란 별명을 얻고 단명했다. 황 장관은 1993년 2월 여성 첫 환경처 장관에 발탁되며 관심을 받았으나 그해 4월 수돗물 자료의 부실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지적에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그리 나약해서 장관직을 수행하겠느냐”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고, 울보 이미지를 벗지 못한 황 장관은 그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반면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시도 때도 없이’ 웃음보가 터진 끝에 지난 2월 10개월 만에 낙마했다. 윤 전 장관은 인사청문회 답변 때 웃음을 짓는가 하면, 전남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된 국회 회의 등에서 웃음을 지어 수차례 구설에 올랐다.

조금은 다르지만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눈물도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후 며칠 간 눈물을 흘렸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실제로 눈물을 흘린 것이 맞다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