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지방선거 제대로 하자
입력 2014-05-17 02:51
요즘 아침 출근길은 마음이 무겁다. 지하철에 앉아서 펴 든 신문의 지면에서 아우성치는, 자식 잃은 부모들의 애달픔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른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가슴을 내리누르곤 한다. 그래선지 세월호 사고를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전 국민일보 국제면에 실린 사진 두 장이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붉은 히잡을 쓴 여인 사진, 그리고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두 여성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협정문에 사인하는 사진이었다.
히잡을 쓴 여인은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납치된 여중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 참가자였다. 서구식 교육을 받는 게 죄악이라며 여학생 270여명을 납치한 보코하람은 이들을 노예로 팔거나 강제 결혼시키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여성에게 교육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나이지리아. 그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나라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여성 대통령이 다스리고 있다. 지구촌은 빈부만큼이나 성평등의 격차도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이었다.
우리나라의 성평등은 어느 수준일까? 대통령이 여성이고, 제1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도 여성이다. 정치 분야만큼은 성평등을 이룬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2월 취임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김행 원장은 홈페이지에 남긴 인사말에서 “특히 정치 참여와 의사결정권 부분에서 여성의 위치가 여전히 초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국제의회연맹(IPU)이 의회가 있는 세계 18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4 여성정치인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원 비율은 15.7%로 91위를 기록했다.
6·4 지방선거 결과도 우리나라 여성정치인 지도를 핑크빛으로 바꾸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60개 여성단체가 모인 ‘6·4 지방선거 긴급여성네트워크’는 ‘생활 정치의 현장인 지방자치선거에서는 여성 참여확대가 더욱 절실하다’며 지난 3월말 각 정당에 ‘지역구 여성공천 30%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3자리 중 1자리를 요구하는 여성계에 대해 남성 정치인들은 공석에선 ‘인물이 없다’, 사석에선 ‘욕심이 과하다’는 반응을 보여 왔다. 30%는 주먹구구로 나온 수치가 결코 아니다. 스웨덴 정치학자 드루드 달럽은 1988년 여성이 한 집단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최소한 30%의 리더 자리는 확보해야 한다는 ‘임계수치(Critical mass)’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인물이 없다는 주장은 누워서 침 뱉기다. 각 정당은 성 평등 정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주체로, 여성 정치인을 길러내야 할 임무가 있다.
사실 여성계는 이번 지방선거에 기대를 걸었다. 새로운 정치를 주장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지금까지의 여느 정당들과는 다를 것으로 봤다. 또 여성 후보를 내세워 집권당이 된 새누리당은 책임의식을 갖고 변화를 보여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결과는 양당 모두 여성 공천자의 비율이 30%를 훨씬 밑돌고 있다. 한 여성 단체장은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고 참담해했다.
이제 공천은 끝났다. 무소속 후보 등록도 마감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투표하는 일이다. 투표용지에 올라 있는 후보와, 그 후보가 속한 정당의 여성정책과 양성평등 의식을 꼼꼼히 살펴 투표하자. 이번 선거에서 여성의 힘을 보여 주어야 2년 뒤 국회의원 선거 때 여성 공천 30%를 쟁취, 양성평등 정책을 구현할 수 있다.
김혜림 문화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