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과 웰다잉] 웰다잉 연극단장 최명환 “죽음 공부, 사는 법이 보였다”
입력 2014-05-16 17:51 수정 2014-05-17 02:42
‘이대로 죽을 수 있겠구나. 죽으면 어떻게 될까?’ 최명환(66·경기도 이천 은석교회) 웰다잉(Well-dying) 연극단장이 암 수술 직전 한 생각이다. 그는 신장암과 폐암으로 세 번 수술대에 올랐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미지의 세계이자 공포의 대상인 죽음이 궁금해 두 번째 수술 후 ‘죽음 공부’를 시작했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의 종말을 인정하자 새 삶이 펼쳐졌다. 대기업 임원에서 웰다잉 강사를 거쳐 연극배우로 인생 3막을 연 최 단장을 지난 13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은발에 깔끔한 양복을 입은 노신사는 만나자마자 명함 2장을 건넸다. 웰다잉 연극단이 속한 각당복지재단과 중부웰다잉문화연구소 명함이다. 연구소는 웰다잉 관련 학술행사와 세미나 개최를 위해 지난해 그가 설립했다. “잘 죽기 위해 4년 전부터 버킷리스트를 쓰고 있어요. 매년 갱신하는데 최소 20%는 달성합니다. 연구소 설립도 버킷리스트에 들어 있던 거예요.”
하지만 원래 잘 죽는 데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서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최 단장은 삼양사 영업담당 중역을 지냈다. 30여년간 근속하며 관계사 대표를 맡는 꿈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가온 죽음의 위기는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2003년 신장암 판정을 받은 최 단장은 그해 오른쪽 신장의 3분의 1을 잘랐다. 불행히도 2년 뒤 왼쪽 신장에 암세포가 전이됐다. 이번엔 왼쪽 신장의 4분의 1을 잘라야 했다. 담당의는 이전보다 위험하고 까다로운 수술이라는 소견을 제시했다. 죽음을 예감한 그는 신변정리에 나섰다. 유언장을 쓰고 아내와 친구에게 당부할 말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참 답답했지요. 죽음에 대해 터놓고 말하고 싶은데 다들 ‘불길하다’며 피하니까요. 그때 결심했죠. 만약 산다면 저같이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하겠다고.”
수술 후 2년 만에 정년퇴임을 한 그는 죽음 관련 책과 강의를 두루 섭렵했다. 그러다 2008년 우연히 각당복지재단의 죽음준비 교육 지도자 과정을 알게 된 최 단장은 단숨에 달려가 등록했다. 이곳에서 그는 2년간 죽음준비 교육 지도자 과정과 웰다잉 교육 전문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죽음은 여전히 무거운 주제였다. 2009년 서울 마포구청에서 한 첫 강의에서 50, 60대 청중은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청중이 죽음을 자기 일로 느낄지 고민이 됐다. 마침 그 해 각당복지재단이 ‘웰다잉 연극단’을 시작했다. 연극으로 죽음의 의미를 설명하자는 의도에서다. ‘쉬운 강의’를 하고자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생애 첫 오디션에서 그는 주연으로 발탁됐다. ‘단원 평균 연령 66세’인 웰다잉 연극단에 창단 멤버로 합류한 그는 ‘립스틱 아빠’ ‘행복한 죽음’ ‘소풍 가는 날’에 연극배우이자 단장으로 활약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은 수술의 아픔도 잊게 했다. 2012년 폐암 수술을 받은 그는 두 달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전국의 사회복지관과 교회, 노인대학 등에서 무대를 올린 극단은 지난해 100회 공연을 돌파했다. 올해는 중견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장두이와 손잡고 김천국제가족연극제 무대에 오른다. 그는 ‘밑져야 본전’이란 도전이 5대 1의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밝게 웃었다.
죽음에서 삶의 유한함을 배우는 게 ‘웰다잉’이라 정의한 그는 크리스천에게 잘 죽기 위해선 창조적인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죽음을 앞둘수록 사회봉사나 가족에게 헌신하기, 자아성취 등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지금 만족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삶의 행복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 보세요.”
양민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