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13) 온두라스 산골 마을에서

입력 2014-05-17 02:43


온두라스의 산을 넘고 있는 중이었다. 한반도의 약 절반 크기인 중남미의 온두라스는 국토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다. 서쪽으로 과테말라, 남서쪽으로 엘살바도르, 동쪽으로 니카라과와 국경을 접한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전체 국토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조금 넘는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계속 밀면서 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한 지 벌써 며칠 째다. 소원이 있다면 원 없이 갈증을 푸는 것이다. 시원한 내리막길로 자전거를 한 번 타보는 것이다. 죽을힘을 다해 산을 오르다 그만 물이 똑 떨어졌다.

결국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이방인의 방문에 호기심을 보이며 내 입술에서 나오는 서툰 스페인어에 귀 기울였다.

“당장 목을 축일 물 한 잔이면 됩니다. 혹 괜찮다면 수통에 받아갈 물까지 있다면 좋겠고요.”

이들은 나의 요청에 바로 반응한다.

“여기 물 한 잔이요.”

아이가 물 한 잔을 가져왔다. 아이가 건네주는 물. 마실 수나 있을까? 외곬으로 들어가는 산골 마을에서 정수(淨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건 트럭이 아니다. 나귀다. 이런 곳에선 물 파는 곳도 없다. 시장이나 가게가 없기 때문이다.

컵엔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컵 안에 담긴 물에는 불순물로 보이는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하지만 마셔야 한다. 마시고 싶다. 갈증이 너무 심했다. 그냥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물을 마셨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는 말씀이 떠올랐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물 한 잔 주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보실 것이다.

물 한 잔 마시는 게 뭔 대수라고 동네 몇 가정의 아낙네들이 마당에 나왔다. 그리고는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며 목을 축이는 내 모습을 보고 깔깔 웃는다. 아이들은 더 신이 나 있었다. 자기네가 건네주는 물을 잘도 받아 마시니 날 보곤 녀석들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여행자에게 물 한 컵이 얼마나 소중한가. 잠시 낮은 돌담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한다.

잠시 뒤, 한 아이가 또 물을 가져온다. 한 컵만으론 부족한 걸 알았나 보다. ‘고맙다’며 지친 웃음을 짓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녀석이 가져온 그릇에 든 물에는 ‘얼음’이 있었다. 서툴게 깨어진 큰 덩어리 하나다. 아이는 이 더운 날, 물 한 잔을 요청하는 이름 모를 나그네에게 내놓은 것이다. 자기 집 냉동실의 두툼한 얼음을 통째 잘라 넣어 건넨 것이다. 내 지친 얼굴과 땀으로 범벅된 옷을 본 아이가 ‘얼음’을 넣은 것이었다. 이 산간 마을에서 얼음은 아이에게도 아이의 가족에게도 얼마나 귀하겠는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마태복음 18장 말씀의 현현이었다. 자기가 나에게 주는 기쁨을 알고 있는 걸까. 아이는 쑥스러운 미소만 지을 뿐이다. 잠시 숨만 고르고 떠난 작은 산골 마을이었지만 그곳에서 나는 어린 아이의 순전한 사랑을 보았다. 아이를 통해 전해진 광야의 귀한 은혜다.

(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