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우유 포장상태 점검하는 생산직 직원 ‘우유 장인’으로 둔갑한 소문의 진실은…

입력 2014-05-16 03:10


[친절한 쿡기자] 대한민국 남녀 7500여명에게 ‘찌라시’를 본 적이 있는지, 봤다면 신뢰하는지를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절반 이상이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10명 중 7명은 ‘대체로 신뢰한다’고 했습니다. 찌라시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 중 35%는 ‘다른 사람에게 보낸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모아 놓은 문서인 ‘찌라시’를 믿는다는 비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유포장을 점검하는 생산직 직원 김현복씨를 장인(匠人)으로 둔갑시킨 이색 소문을 통해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달 초부터 인터넷엔 ‘D우유는 유통기한 표기란 옆에 적혀 있는 검수관의 이름에 따라 우유 맛이 다르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우유팩에 ‘김현복’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으면 약간 진하고 맛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문은 커뮤니티 게시판, 블로그, SNS를 타고 빠르게 퍼졌습니다. 네티즌들은 소문을 퍼나르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을 토대로 살을 붙였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 김현복씨는 ‘심혈을 기울여 우유를 만드는 우유 장인’이 됐습니다.

네티즌들 중 상당수는 ‘김현복 장인설’을 접한 이후 해당 우유를 구입할 때 검수관 이름부터 확인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직접 마셔봤는데 맛이 미묘하게 진하다”며 장인의 존재를 확신했지요.

하지만 15일 업체에 확인한 결과 애석하게도 장인은 없었습니다. 김현복씨는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포장상태를 점검하는 생산직 직원으로 우유의 맛과는 관계가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업체 관계자는 “네티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가 홍보에는 도움이 된다”며 웃었습니다.

‘잘못된 소문’은 왜 진실로 둔갑해 우유 업체에 난데없는 ‘대박’을 안겨준 것일까요. 소문이 퍼지는 과정은 찌라시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누군가 툭 던지면 이를 본 사람은 자신의 느낌이나 상상력을 보탠 후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근거 없는 우스갯소리가 기승전결까지 갖춘 이야기가 됐고, 결국 믿을만한 사실로 자리잡은 겁니다.

소문을 만들어내고 또 믿게 된 사람들. 어쩌면 사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해야 할 정부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해 나타난 현상 아닐까요. 이번 이야기는 한 명의 장인을 만들어 낸 ‘미담’이지만 다음은 정반대의 파국을 부를지 모릅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