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일터질 때마다 밤낮없이 월화수목금금금… ‘그로기’ 금감원

입력 2014-05-16 03:05


금융파수꾼 요즘 풍경

동양 사태 해결의 중책을 맡았던 이들 중 한 명인 금융감독원의 A국장은 수개월간 심각한 과로에 시달리면서도 마음 편히 휴가를 쓰지 못했다. 잠시 짬을 내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돌아와 일에 매진하길 반복했다. 수많은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사태를 조속히 수습해야 한다는 의지가 컸지만 주변에선 기진맥진한 그를 지켜보며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국회와 증권가를 넘나드는 대관(對官) 업무 직원들 사이에서 “A국장이 중병에 걸렸으면서도 계속 출근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사실 ‘링거 투혼’은 금감원 직원들에게 내세울 얘깃거리가 안 된다. 서로 순번을 정해 한 시간씩 돌아가며 병원에서 비타민 수액주사를 동반한 쪽잠을 자고 돌아오는 건 금감원의 신풍경이다. 지난해부터 동양 사태, 개인정보 유출 사태, 4대 시중은행 점검, KT ENS 대출사기 관련 특별검사 등 이슈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밤새워 국회 요구 자료를 만든 뒤 식사를 하다 졸았다는 일화는 차라리 우스운 얘기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모두를 놀라게 한 팀장도 있다.

금감원 직원들의 업무 강도는 인권 문제가 상기될 정도로 한껏 높아져 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별 대응과 금감원 쇄신책 천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휴일 출근, 밤샘 근무는 언젠가부터 기본이다. 한밤중에도 대부분 사무실의 불이 켜진 금감원에서는 점심보다 저녁 시간의 구내식당 이용률이 높다. 금감원의 고참들은 “늘 있었던 일”이라면서도 “신입 직원들은 정시 퇴근이 없는 문화를 혼란스러워하는 듯하다”고 걱정하고 있다.

현업을 떠난 파견 업무가 잦아진 점도 애로사항이다. 2만개가 넘는 동양 녹취록 분석에 70여명을 투입했던 때는 팀원을 절반 이상 잃어버린 팀장이 속출했다. 직원 설문조사를 하려 했는데 대다수가 현장에 있어 쑥스럽게 무산된 적도 있다. 현재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청해진해운 및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여신·외환·회계·보험 관련 문제 긴급점검에 직원 156명이 투입된 상태다. 이들 대부분은 파견 업무뿐 아니라 원래 맡았던 일도 투트랙으로 돌보고 있다.

심각한 노동 강도는 임원들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B부원장은 KB국민은행의 도쿄지점 부당대출 사건에 대한 검사를 지시하던 당시 귀가를 하지 않고 본인 집무실에서 야전침대 생활을 했다. 이달 초 석가탄신일까지 이어진 긴 연휴가 끝난 뒤 금감원 직원들 간에는 서로 “연휴에 무얼 하셨느냐”는 인사가 없었다. 연휴 기간 금감원에는 매일 200명에서 300명의 직원이 출근해 있었다. 임원이 자리에 나오니 국장이 출근하고, 국장이 출근하니 팀장과 실무진이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사태의 저간에는 사실 최수현 원장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다. 취임 후 굵직한 현안들에 유독 많이 부딪힌 최 원장은 직원들에게 더욱 빈틈없는 파수꾼 역할을 독려하고 있다. 기동타격대식 암행감찰 확대, 기획검사국 신설 등 당국의 쇄신책도 자주 공표했다. 악역을 자처한 주마가편에는 ‘국민적 눈높이’라는 대의가 있다. 최 원장은 지난 14일 국민일보와 만나 “사회의 온갖 이슈가 금융과 연결된 시대”라며 “직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금융 당국의 책무는 상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 직원들의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크다. 금감원 조영균 노조위원장은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그는 올 초 노조위원장에 당선되자마자 임원진에 거침없이 연도별 사망자 현황을 요구했다. 조 위원장은 “자세한 숫자를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제조업 현장도 아닌데 해마다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재해 여부를 선명히 따지긴 어렵겠지만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보험감독원 출신으로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노조위원장을 맡은 그는 10여년 사이 이해할 수 없이 금감원의 노동 강도가 심각해졌다고 평가했다. 높아진 노동 강도만큼 사기는 떨어져 있다. 한 팀장은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무수한 욕을 먹는 직업임을 알지만 직원끼리 단합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조정하는 금감원의 예산은 올 들어 공기업 방만경영 타파 분위기 속에서 대폭 삭감됐다. 금감원 직원들에게는 분기마다 3만원씩의 회식비가 책정돼 있었지만 올 들어 이마저 사라졌다. 계속되는 야근에 직원들을 달래려는 부서장들은 사비를 털어 짜장면을 산다. 한 국장은 “인사이동에 따른 환송 모임조차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로기 상태에 달한 금감원의 피로와 사기 저하는 대국민 서비스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제기된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시대적 요구를 따르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경고음이다. 금감원 노조에 따르면 실제 과거 20∼30건이던 직원 1인당 민원해결 진행 건수는 인력난에 따라 현재 약 150건에 이르고 있다. 조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 원장을 만나 “장기 미제를 해결하고 가자”며 직원 사기진작 방안을 중심으로 한 노사협의회를 제안한 상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