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플로베르 이들이 잉여인간?
입력 2014-05-16 02:13
잉여의 미학/박정자/기파랑
‘남아나는’ ‘여분의’ ‘쓸모없는’ 등을 뜻하는 잉여(剩餘)는 풍요와 소외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상명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프랑스 출신의 20세기 대표지성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미학을 ‘잉여’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책의 부제는 ‘사르트르와 플로베르의 미학 이중주’라고 붙였다. 구스타프 플로베르(1821∼1880)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다.
사르트르의 미학을 얘기하면서 웬 플로베르인가. 사르트르는 문학과 작가의 사회적 책무를 외친 참여문학의 기수이고, 플로베르는 문학을 통한 개인의 구원에 열을 올린 작가가 아닌가. 게다가 사르트르는 1871년 민중봉기로 혁명을 이룬 ‘파리 코뮌’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불러온 책임자로 플로베르를 지목하며 깎아내리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저자는 사르트르와 플로베르를 연결할 단서를 사르트르 만년의 저작 ‘집안의 백치’에서 찾는다. 플로베르의 일생을 꼼꼼히 추적한 전기이자 플로베르의 문학비평 소개서이면서 19세기의 사회상과 당시 작가들의 정신적 비평을 보여주는 방대한 책이었다. 사르트르의 온갖 사상이 녹아 있는, 한마디로 플로베르에 관한 모든 것이고, 동시에 사르트르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데 왜 잉여인가.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플로베르는 반강제로 법대에 들어가 사법시험에 번번이 떨어지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스물세 살에 뇌전증(간질)에 시달리다 아버지의 죽음 후 거짓말같이 병이 낫고는 순식간에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젊은 시절의 무능은 억압하는 아버지를 향한 위장이었고, 아버지의 죽음 이후부터는 잉여의 삶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나 잉여인간이라는 자의식을 평생 달고 다닌 사르트르가 문학에 처음 눈을 뜬 계기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었다. 사르트르는 한때 플로베르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그를 온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사르트르는 20년간 준비한 ‘집안의 백치’를 통해 플로베르의 실패를 냉철히 분석했다. 그 요약은 이렇다. “상상이 얼마나 허약한 것이며 현실은 얼마나 단단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