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잊혀진다… ‘5월 광주’
입력 2014-05-16 02:12
소년이 온다/한강/창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처럼 ‘80년 5월 광주’는 작가들에겐 일종의 시험대와 같다. 최윤 송기숙 황석영 임철우 공선옥 등 많은 작가들이 치열한 역사의식, 자기만의 감수성과 표현력으로 그 시험대를 통과해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치열하게 매달려온 작가 한강(44)이 5·18 민주화항쟁을 다룬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그는 왜 지금 다시 광주를 이야기하려는 걸까.
14일 전화로 만난 한강은 특유의 담담한 어투로 그 이유를 들려줬다. 그는 2011년 ‘희랍어시간’을 쓰고 난 뒤, 인간을 껴안아주는 밝은 소설을 쓰리라 마음먹었단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깨달았다. “11살 때 광주를 간접 경험했다. 당시 광주에서 벌어진 일을 인간이 저질렀다는 사실은 엄청난 공포였고, 내가 그런 인간의 일원이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는 숙제 같은 것이었다. 등단 이후 20년간 인간에 대해 의문을 품고, 인간의 폭력성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인간을 껴안고 싶어 했던 나의 근원에 5월 광주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뚫고나갈 수밖에 없고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적인 계기로 작품을 시작했지만 광주에 대한 자료를 읽을수록 자신이 꼭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단다. 2009년 용산 참사 등을 보면서 보통 명사로서의 광주는 끝난 것이 아니고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소설은 1980년 당시 중학교 3학년 동호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동호는 함께 행진하다 계엄군이 쓴 총에 맞은 친구 정대를 찾아다니다 도청 상무관에서 당시 희생된 이들의 시신 수습하는 일을 돕게 된다. 진압군이 도청을 점령하던 그날 밤, 살아남은 여고생 김은숙과 양장점 미싱사 임선주, 대학생 김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까지 5년, 10년, 20년, 30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당시의 깊은 상처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삶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들려준다.
그 중에서도 진수는 살아남았다는 치욕과 가혹한 고문 후유증과 싸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삶을 증언하는 화자의 목소리에 광주라는 비극 속에서 마주한 인간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냐고 묻는 작가의 음성이 겹쳐진다.
왜 무시무시한 진압군이 오는 걸 알면서도 도청의 소년과 청년들은 피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키겠다며 든 총을 쏠 줄도 몰랐으면서.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116쪽)
어떤 진압군들은 더 잔인하게 시민군을 대했다. 왜 그토록 무자비했을까.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중략)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134∼135쪽)
작가는 동호를 ‘너’라고 부른다.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은 가슴 한켠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너는’이라고 하면 (나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화살이 (나에게) 날아오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동호라는 소년을 너라고 부르면서 동시에 읽는 사람을 함께 부르고 싶었다.”
잊고 있었지만, 때론 알면서도 외면했지만 소년이 끝내 건너지 못한 여름을 지나 2014년 5월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80년 5월 광주’는 지금도 이어져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