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도로 대신 ‘광장’ 만들었더니 시민들 삶이 ‘행복’으로 탈바꿈

입력 2014-05-16 02:06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찰스 몽고메리/미디어윌

2006년 봄, 유엔은 세계 인구 중 도시 거주민의 비율이 50%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30년이 되면 도시에 거주하는 숫자가 50억명에 육박하리라는 전망도 내놨다. 도시화 속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점점 빨라진다.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 넘쳐나는 자동차,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공간에서조차 경계를 풀 수 없을 정도로 삭막한 이웃 관계. 인간의 쾌적한 삶을 위해 만들었다는 ‘도시’에 사는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저자는 캐나다 출신의 도시계획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그는 콜롬비아 보고타를 혁신적으로 바꾼 엔리케 페날로사 시장과 만나면서 ‘변형적 어버니즘(transformative urbanism)’이라는 희망의 싹을 보았다. 도시가 시민들의 삶을 바꾸고, 시민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품게 된 것이다.

사실 보고타는 내전과 테러, 오염과 빈곤, 여기에다 어마어마한 교통체증까지 더해져 사실상 도시 기능을 상실한 곳이었다. 하지만 1997년 보고타 시장 선거에 출마한 페날로사는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공약 대신 소득은 낮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내걸었다.

그는 먼저 “도시는 사람에게 친화적일 수도 자동차에게 친화적일 수도 있지만, 사람과 자동차에 모두 친화적일 수는 없다”며 고속도로 확장 계획을 철회했다. 대신 시의 예산을 자전거도로와 공원, 보행광장, 도서관 등의 시설에 투입했다. 또 유류세를 인상하고, 시민들의 자동차 통근을 주3회로 제한하며 ‘자동차 없는 날’을 도입했다.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는 듯했지만 이내 시민들은 자동차 없이 걷는 삶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로부터 시작된 ‘행복도시 운동(happy city movement)’은 곧 미국과 유럽 등으로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프랑스 파리와 덴마크 코펜하겐 등의 도시에서도 공공자원인 도로 공급을 다양한 형태로 재분배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미국 뉴욕시에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2007년 부임한 자넷 사디칸 뉴욕시 교통국장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뉴욕시의 도로를 최적의 용도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초반엔 자동차 교통체증을 해결하는데 주력할 계획이었지만 조사 과정에서 보행로 부족이 더 문제임을 알게 됐다. 타임스퀘어의 상황이 가장 안 좋았다. 그는 2009년 메모리얼데이에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로의 차량 진입을 막는 실험을 시도한다. 사디칸 국장은 차가 없는 거리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활보하던 장면을 볼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저자 역시 2011년 9월, 84세의 노모와 함께 이 곳을 찾은 경험을 소개하며 “새로 태어난 타임스퀘어의 혜택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의 장점은 단순히 사례연구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역사와 철학의 토대 위에서 도시와 행복의 상관관계를 분석한다. 특히 행복에 관한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도시 생활을 살펴보면서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우리 도시의 아픈 현실을 꼬집는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유롭게 거주지와 주택 형태를 선택하지 못하는데 이는 도시 건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극소수 관계자, 즉 도시계획자, 도시공학자, 정치인, 건축가, 사업가, 부동산 투기꾼들이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도시 풍경에 투사해놓았기 때문이다.”

미국 사례가 많지만, 교외로 탈출해 비싼 집을 선택한 뒤 출퇴근하느라 고속도로에서 하루 2∼3시간을 허비하고, 이 때문에 이웃은 물론 자녀, 부부 관계까지 위기에 빠지는 모습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런 삶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개개인이 도시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이웃과 신뢰를 쌓고 협동 관계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귀기울여야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본성을 반영하는 도시, 이웃과 보행자 그리고 마을 사람을 존중하는 도시가 더 건강한 도시다. 이런 도시는 주민들의 인간관계를 증진한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도시 생활을 꿈꿔왔던가. 마음 편히 잠시 아이를 맡길 이웃 하나 없이, 고립된 채 살아가는 아파트 생활을 내가 과연 바라왔던가. 책은 이제라도 내가 생각하는 도시에서의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찬찬히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는 듯하다. 윤태경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