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國富 89%가 토지·건물 ‘부동산 공화국’… 한은-통계청, 첫 국민대차대조표 발표
입력 2014-05-15 02:15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국민대차대조표를 처음으로 만들어 한국의 국부(國富)를 따져봤더니 1경630조6000억원에 달했다. 국부의 대부분은 비금융자산(실물자산)이며, 비금융자산의 절반 이상(52.2%)은 토지자산이었다. 경제주체들이 부동산에만 지나치게 얽매여 있어 돈이 금융투자 등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해 경제 활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과 통계청이 14일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한국의 국부인 국민순자산(자산-부채)은 2012년 말 현재 1경630조6000억원으로, 국민 1인당 2억1259만원이다. 경제주체별 순자산 규모는 가계·비영리단체가 57.0%, 일반정부 25.7%, 비금융법인기업 14.3%, 금융법인기업이 2.9%를 차지한다. 개인부문인 가계·비영리단체가 보유한 순자산을 구매력평가 환율(2012년 달러당 847.93원)로 환산하면 가구당(4인기준) 57만1000달러(4억8449만원)로 미국의 63%, 일본의 82% 수준이다.
순자산에서 비금융자산이 1경731조7000억원이며, 순금융자산(금융자산-금융부채)은 -101조1000억원이다. 2002년 이후 순자산은 국내총생산(GDP)의 6.7∼8.1배 범위에서 변동하면서 비금융자산과 거의 동일한 수준을 나타냈다.
비금융자산에선 토지자산(5604조8000억원)과 건설자산(3852조5000억원)이 88.1%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설비·재고·지식재산생산물이었다. 전체 순자산 중에서 토지와 건설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88.9%에 달했다. 토지자산은 2000년 GDP의 3.1배에서 2012년 4.1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2012년 순자산은 1년 전에 비해 464조6000억원 늘었다. 증가 요인은 거래 요인보다 보유손익을 비롯한 거래외 요인이 컸다. 보유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을 뜻하는 보유손익은 2006년 이후 비금융자산 증감의 64.9%를 차지했다. 2006년 73.3%에서 부동산 경기 둔화로 2012년 57.4%로 비중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보유손익이 순자산 증가를 이끄는 주된 요인이다.
1970년대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고정자산(건설·설비·지식재산생산물) 축적 규모는 선진국 수준인 GDP의 3.5배까지 도달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설비투자 부진이 지속돼 고정자산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지고 있으며, 자본생산성을 보여주는 자본서비스물량 증가율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10%대에서 4%로 급락했다.
국민대차대조표에선 우리나라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부동산 등 비금융자산 비중이 지나치게 크고 금융자산 비중은 작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부동산에 돈이 묶여 있으면 다른 생산적인 곳에 투자가 제대로 안 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으면 경기에 상당한 타격을 준다”면서 “부의 축적 수단으로 금융자산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국부 통계는 기업의 재무제표처럼 감가상각 등을 반영해 작성 시점의 현재가격으로 자산을 평가한 것이 특징이다. 이전 통계에선 부동산을 시가보다 훨씬 낮은 공시가격으로 추계했지만 이번에 시가 평가로 바꿔 비금융자산 수치가 많이 증가했다. 또 건물과 토지뿐 아니라 연구개발(R&D)·소프트웨어 등 지식생산물도 자산으로 반영했다. 한국은행은 매년 5월 연간 단위로 국민대차대조표를 발표할 계획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