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 아듀!… “팬들에게 받은 사랑 돌려드릴 것”

입력 2014-05-15 03:10


“후회는 없습니다. (축구 인생을) 충분히 즐겼습니다. 박지성의 축구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만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33·PSV 에인트호벤)의 표정은 밝았다. 25년 동안 뛴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아쉬움보다 인생 제2막을 여는 기대감이 더 큰 듯했다. 박지성은 7월 27일 김민지 전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무릎 상태 좋지 않아 은퇴 결심”=박지성은 14일 수원시 영통구 박지성축구센터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아버지 박성종씨, 어머니 장명자씨와 함께 나와 먼저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을 했다. 이어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려고 한다”며 “2월부터 은퇴를 생각했다.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시즌을 버티기엔 무리라고 판단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단상 앞에는 영광과 시련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10벌의 유니폼이 전시돼 있었다. ‘세류국교’라고 새겨진 작고 낡은 유니폼을 시작으로 화성 안용중, 수원공고, 명지대, 국가대표팀, 교토 퍼플상가, 에인트호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퀸스파크레인저스(QPR), 그리고 다시 에인트호벤 시절 유니폼까지 박지성이 입었던 것들이다. 테이블 왼쪽에는 박지성이 세류초 축구부에서 처음 신었던 검은색 축구화가 놓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아직 그라운드의 흙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주황색 축구화와 축구공이 놓였다. 에인트호벤에서 뛴 마지막 경기에서 쓴 것들이다.

박지성은 자신을 평가해 달라는 요청에 “10점 만점에 7점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은 거스 히딩크 감독님이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님도 세계 최고의 레벨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지성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얼마나 자신 있게 자신의 경기력을 보여 주느냐가 중요하다”며 “원정 16강을 이뤘기 때문에 이제 8강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번에 못하더라도 다음 혹은 그 다음 월드컵에서 8강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 돕겠다”=팬들은 ‘지도자 박지성’을 볼 순 없을 것 같다. 박지성은 “일단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다. 지도자 자격증도 없어 지도자를 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팬들은 ‘행정가 박지성’을 만날 가능성은 있다. 박지성은 “행정가를 꿈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국내에 머물 것 같지는 않고 유럽에서 생활할 것 같다”고 전했다.

박지성은 또 “해설가를 하게 된다면 선수들을 너무 비판할 것 같다. 후배들을 비판하기 싫어 해설가는 안 할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박지성은 “한국 축구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한국 축구, 한국 스포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박지성은 에인트호벤 유니폼을 입고 22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수원 삼성과 친선 경기를 펼친 뒤 24일에는 창원축구센터에서 경남 FC와 경기를 벌인다. 이어 6월 인도네시아에서 자선 경기를 가진다. 7월 25일 K리그 올스타전에선 팬들에게 마지막 경기를 선사한다.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깜짝 등장해 환하게 웃으며 박지성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얼떨떨한 표정을 지은 박지성은 환하게 웃으며 예비신부의 손을 잡았다.

수원=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