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안전 대한민국⑧] 美 유기적 재난대응체제 ‘허드슨강의 기적’을 낳았다

입력 2014-05-15 03:28


⑧ 선진국에서 배운다

#1. 2012년 10월 29일 미국 뉴욕과 뉴저지 일대를 초대형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했다. 100여명의 사망자와 수백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났다. 하지만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발 빠른 재난예고와 대비, 효율적인 대피·구호 시스템으로 피해를 큰 폭으로 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대형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은 당시 대선 국면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바짝 추격당하던 판세를 결정적으로 뒤집은 요인으로 꼽혔다.

#2. 2009년 1월 15일 승객 150명을 태운 유에스에어웨이 소속 여객기는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서 이륙하자마자 새떼를 만나 엔진이 모두 멈췄다. 이 여객기의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은 회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허드슨강에 불시착하기로 결정하고 즉시 구조신호를 보냈다. 뉴욕항만청은 사고를 접수하자마자 구조선과 헬기를 총동원해 불시착 3분 만에 탑승자 탈출을 도와 전원 구조했다. 이 사건은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불렸다.

두 사건은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미국의 재난대비 및 구호시스템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미 정부가 이러한 호평을 받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미국은 9·11테러 공격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앙을 겪으며 국가재난 대비·구난체제를 전면 혁신했다. 미 전문가들은 “지금도 미국의 위기대응 시스템은 진화 중”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사례를 살필 때 연방제 국가라는 점이 최우선적으로 감안돼야 한다. 국방과 외교, 통상, 경제정책 등은 대통령에 책임이 있지만 주민의 생활과 연관된 공공서비스는 지방정부와 주정부의 책무이다. 간단히 말하면 재난 예방 및 대응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지방정부에 있다. 지방정부는 ‘긴급운영계획(Emergency Operation Plan)’을 작성·유지해야 하며 재난관리과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비상시 실질적인 재난관리 활동은 재난운영센터(EOC·Emergency Operation Center)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각종 건축물 안전진단과 검사, 각급 학교에 대한 비상훈련·매뉴얼 작성도 지방정부의 책무다.

가령 다리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해당 카운티(county)나 시(city), 타운(town) 등 지방정부의 군수나 시장은 재난관리 공무원과 협의해 긴급 구조에 나선다. 소방관과 경찰, 기타 공무원이 총동원된다. 하지만 사태가 심각할 경우 지방정부의 지도자는 지역의 자원봉사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와 인근 지방정부의 공권력을 요청한다.

지방정부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주정부가 긴급대응에 나선다. 주정부는 대형 산불이나 허리케인 재앙 등에는 주방위군까지 동원한다. 연방정부는 주정부가 자신들의 자원으로도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 ‘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전면에 나선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는 다양한 형태의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랜들 그리핀 조지타운대 비상사태·재난관리대학원 교수는 “연방제에 기초한 미국의 통치 시스템은 대부분의 위기 통제를 정부의 가장 낮은 조직 수준에 맡기고 있다”며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역할은 지시와 통제가 아니라 지원과 조정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후변화 등으로 자연재해가 빈발하고 강도가 세지는 만큼 재난대응에서 FEMA 등 연방정부의 역할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다. FEMA는 운송·통신·소방·구급·도시수색·구조·식량·에너지 등 12개 응급지원 기능을 구분해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피해지역 주민을 위한 의료지원부터 저금리 자금 대출까지 FEMA의 관할권은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다.

재난 발생을 대비한 평상시 준비와 재난전문가 육성도 FEMA의 몫이다. 최근에는 주정부, 지역 대학 등과 연계해 각종 재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예산도 지원한다. 올해부터는 방재인력교육원(IWA)을 운영하며 전문가를 직접 양성하고 있다. 재난 현장에서 수집한 각종 자료를 모은 데이터베이스인 재난관리 지원환경 프로그램(DMSE)도 책임진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당시 연 28건에 불과하던 재난선포 횟수는 오바마 대통령 재임 이후 2013년 9월까지 연 139건으로 급증했다.

미국 재난대응의 성패는 지방정부와 연방정부 간, 또 다양한 연방정부 간 유기적 조정과 협력을 급박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실시간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재난대응 수준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앙 이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이 2008년 대통령령에 의해 제정된 국가재난대응체제 혹은 그에 관한 매뉴얼을 뜻하는 NRF(National Response Framework)이다. NRF는 특정한 사고가 아니라 잠재적 재난, 자연재해, 테러공격까지 모든 위험한 사건에 대응한 기본 매뉴얼이다. 비상사태 때 다양한 기관과 정부조직, 민간 지원조직들의 책임과 권한, 행동지침, 정보공유 의무 등을 담았다. 관련 기관과 조직들이 지속적으로 개정하도록 한 이 방대한 문서를 최우선적으로 따르도록 해 재난대응 때의 혼선과 비효율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