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발연기 더는 없다… 안방극장 안착한 연기돌
입력 2014-05-15 02:09
연기를 아주 못해 발로 하는 것 같다며 생긴 신조어 발연기. 마치 로봇이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색하다는 뜻의 로봇연기. 그동안 아이돌 그룹 출신 연기자들에게 따라 붙는 평가는 이랬다. 하지만 최근 안방극장은 연기하는 아이돌 ‘연기돌’이 점령했다. 국내외로 인지도가 높아 드라마의 해외 판권 수출에도 도움이 되는데다가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극중 감초 역할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연부터 차근차근…브라운관 안착한 연기돌=과거 대형 기획사의 힘으로 연기력과 상관없이 주인공 자리를 꿰찼던 연기돌. 연기를 전업으로 하는 신인 연기자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어색한 연기로 극의 흐름을 끊으며 비난의 대상이 됐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대선배 손현주와 투톱으로 극을 이끈 SBS ‘쓰리데이즈’의 박유천(JYJ)부터 극을 풀어가는 열쇠를 쥐었던 SBS ‘신의 선물-14일’의 한선화(시크릿)와 바로(본명 차선우·B1A4)까지….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리지 않고 극 곳곳에 활력을 주고 있다.
지상파·케이블 드라마의 출연진을 보면 연기돌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KBS 일일극 ‘사랑은 노래를 타고’에 출연하는 다솜(씨스타), KBS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엔 옥택연(2PM), SBS 주말극 ‘엔젤 아이즈’엔 승리(본명 이승현·빅뱅), MBC 주말극 ‘호텔킹’엔 임슬옹(2AM)이 출연한다.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도 상황은 비슷하다. SBS ‘닥터 이방인’에 출연 중인 보라(씨스타), MBC ‘개과천선’에 나오는 주연(애프터스쿨), tvN ‘갑동이’에 출연중인 이준(본명 이창선·엠블랙)이 존재감 있는 조연 자리를 꿰찼다. MBC ‘트라이앵글’에는 김재중(JYJ)과 임시완(제국의 아이들)이,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에는 이승기가 타이틀롤로 활약 중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다. 과거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나 꽃미남 오빠를 연기했던 이들은 이제 제대로 망가진다. 김재중은 팬티 바람으로 거리를 달리고, 이준은 사이코 패스 살인마를 연기한다. 바로는 6세 지능을 가진 지적장애인을 연기했고, 승리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구급대원으로 활약 중이다. 연기의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다는 평가가 따른다.
◇가수-배우 구분 사라져…멀티 연예인의 활약=지난달 29일 열린 MBC 수목극 ‘개과천선’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김상중은 이같이 말했다. “요즘은 멀티 시대다. 연기나 노래 하나만 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요즘 아이돌 출신 연기자가 연기도 잘한다.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수업도 많이 받는다.”
연예기획사 시스템에 따라 연기와 노래 모두를 데뷔전부터 교육 받아 온 연기돌. 연기 발성과 호흡 등이 가수 활동에도 도움을 주는데다가 뮤지컬 장르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기 때문에 연습생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린 멤버 덕분에 아이돌 그룹 전체의 인지도가 올라가는 홍보 수단으로서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신주진 드라마평론가는 “가수와 배우의 경계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어졌을 정도로 최근 아이돌 가수들은 멀티 플레이가 가능해졌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연예인’이 될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한상덕 대중문화평론가는 “연기돌에게 TV 드라마는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장”이라며 “드라마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돋보이는 장르이기 때문에 영화보다 적응이 쉽다. 드라마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세우고 인지도를 높이려는 아이돌 가수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