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민수] 국가개조 성공하려면

입력 2014-05-15 02:50


역대 대통령들은 통치철학을 담은 캐치프레이즈를 집권 기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정권의 정통성을 표방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고 국민의 힘을 한데 모으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공무원은 물론 재계(財界)를 길들이는 데 동원된 경우도 있다.

전두환정부의 ‘정의사회 구현’, 김영삼정부의 ‘신한국 창조’, 김대중정부의 ‘제2건국’ 등이 대표적이다. 쿠데타로 집권하고, 처음 문민정부를 열었거나, IMF 외환위기로 거덜 난 나라를 물려받은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꽤 적절한 기치를 들었던 셈이다.

이명박정부는 ‘공정사회’였다. 집권 초 비즈니스프렌들리라며 친(親)기업을 선언했던 대통령은 2010년 8·15 경축사에서 다소 뜬금없이 이 화두를 던졌다. 이후 온 나라가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정부는 정책을 양산해 냈고 기업들은 대통령 심기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썼다.

개조에 대한 좋지않은 추억

세월호 침몰로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박근혜정부는 이제 ‘국가 개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게 됐다. 박 대통령 스스로 국가 개조를 통해 수십 년 쌓인 적폐를 일소하겠다고 공언까지 한 상황이다. 개조(改造)의 사전적 의미는 좋아지게 고쳐 만들거나 바꾸는 것이다.

학창시절 근육질을 자랑했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정신 개조’를 복창하게 했다. 운동장을 뛰며 외친 적도 있었고 기합과 함께 진행된 일도 있었다. 유독 좋지 않은 기억은 교사의 눈빛이다. 마치 열등한 부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야당 의원이 “국가 개조는 일본 파시즘 운동가의 용어”라며 박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은 것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국가 개조는 돌입하기 전에 전제가 있어야 한다. 우수한 소수 집권층이 미개한 다수 국민을 이끌고 간다는 발상은 애당초 하지 않는 게 좋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추억을 갖고 접근해서도 안 된다. 세월호 사고로 ‘국가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있는 암울한 시점에서 국가가 개조의 필요성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국가 애도의 날 지정해야

국가 개조의 첫 걸음은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날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사라지고, 가스가 폭발했을 때도 우리는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불과 10년도 안 돼 모두 망각했다.

세월호 참사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 애도의 날로 공식 지정하고 매년 희생자들을 추도하자. 교과서에도 실어 후손들이 비극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서두르지도 말자. 오랜 기간 누적돼 온 문제를 하루아침에 뜯어고칠 수는 없다. 2001년 9·11 테러를 당한 미국은 2004년이 돼서야 최종 보고서를 냈다. 그들은 여야를 초월한 위원회를 구성해 건국 이래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원인과 대책을 밀도 있게 찾았다.

우리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검찰 수사와는 다르게 국가 개조의 목표에 걸맞은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대통령부터 임기 내에 국가 개조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버려야 한다. 임기 4년도 남지 않은 박 대통령은 큰 틀을 잡아주면 된다. 공무원을 다그쳐 봤자 전 국민의 의식과 시스템이 개혁되지 않는 한 제2의 세월호는 또 터질 수 있다.

얼마 전 굴지의 대기업 임원을 만났다. 그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국면 전환을 위해, 국민들의 속을 풀어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대기업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가 개조는 어느 한 구성원의 ‘희생’을 바탕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한민수 외교안보국제부장 mshan@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