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무역센터·아셈타워 화재 대피 훈련 가서 보니… 현장 이탈·담소 안전 의식 아직도 희박
입력 2014-05-14 03:58
“야, 우리 방송에 나올 뻔했다.”
13일 오전 10시45분쯤 서울 강남구 코엑스 무역센터. 건물을 빠져나오던 넥타이 차림의 회사원 10여명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와 코엑스는 이날 사상 처음 입주사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화재 대피 훈련을 실시했다. 이 회사원들은 15분 후 진행될 대피 훈련을 피해 미리 ‘빠져나온’ 것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승강기가 멈춘다는 걸 알고 있던 이들은 “커피나 한 잔 하러 가자”며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서울의 최대 다중이용시설 중 한 곳이다. 그러나 이날 진행된 훈련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부 직원은 ‘혼잡’을 피해 훈련 직전 건물을 떠났고 스마트폰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여유를 부렸다. 안전요원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전 11시5분쯤 중앙관제소 직원의 “자, 준비됐죠”라는 무전과 동시에 호루라기 소리가 무역센터 곳곳에 울려 퍼졌다. 훈련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1층 로비에는 흰색 연막탄이 터졌다. 직원들은 건물 안의 폭 1.2m 남짓한 비상계단 2곳을 따라 대피했고 안내요원들이 코엑스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화재 시 피난요령 매뉴얼’에 따라 대피로 등을 안내했다.
그러나 11시6분쯤 처음으로 1층에 도착한 직원들의 모습에서 진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는 담소를 나누거나 활짝 웃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입과 코를 손수건으로 막지 않은 사람도 10여명 눈에 띄었다. 안전요원들은 별다른 제재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훈련 중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회사원도 여럿 있었다.
건물 밖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코엑스 측은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무역센터 입구부터 대피 장소인 ‘피아노광장’까지 50여m 구간에도 연막탄을 터뜨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건물을 나서자마자 휴지를 코에서 뗐다. 피아노광장에서 진행된 소화기 사용법과 심폐소생술 훈련을 피해 빠져나간 인원도 50명이 넘었다.
소화기 사용 훈련을 받는 동료에게 “이쪽 좀 봐”라며 사진을 찍거나 안전요원이 “이쪽으로 한 명 와주세요” 하고 외치는데도 외면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소화기 분사는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해야 했지만 치마가 짧아 그냥 서있는 여성도 있었다.
당초 코엑스는 아셈타워와 무역센터 입주사 직원 9000여명이 훈련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참가한 사람은 2000여명뿐이었다. 훈련 뒤 예정돼 있던 강평회는 식사시간이라는 이유로 생략됐다. 국내 다중이용시설 중 최고 수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을 갖췄다던 코엑스로서는 머쓱해진 상황이 됐다.
코엑스 관계자는 “훈련 참여가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어서 그런 것 같다”며 “굳이 안 해도 되지만 안전 문제에 대한 입주사의 경각심을 환기하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현장통제요원은 “안전에 대한 시민의식이 미흡하다는 걸 몸소 느꼈다”며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가정해 실시한 훈련이었는데 대충하거나 통제를 잘 따르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