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유일한 얼굴 박물관 운영하는 김정옥 관장 “얼굴엔 세월의 흔적… 수만점 하나 하나가 자식 같아”

입력 2014-05-14 02:08


경기도 광주 남종면 분원길에 위치한 얼굴박물관은 세계 각국의 얼굴 관련 유물이 수만점 전시돼 있다. 연극연출가 출신의 김정옥(82) 관장이 50년 가까이 발품을 팔며 모은 수집품이다. 서울대 불문과와 프랑스 소르본대학 연극영화과를 나온 김 관장은 1960년대부터 ‘대머리 여가수’ ‘따라지의 향연’ 등 연극을 연출하면서 사람 표정이 담긴 물건을 수집했다.

1967년 서울 홍대입구 길가에 버려진 사람 모양 돌조각(石人)을 집으로 가져온 게 수집의 시작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방치된 문인석(文人石) 등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 지금까지 모은 얼굴 돌조각은 400여점. 해외공연을 다니면서 초상화, 목각인형, 가면, 인물사진도 수집했다. 부인 조경자(74) 부관장은 “집에 제발 쓰레기 좀 그만 가져오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2004년 연극계 현장에서 은퇴한 김 관장은 서울 아파트를 판 돈으로 이곳에 얼굴박물관을 지었다. 일생 동안 모은 석상이 야외마당에 터를 잡았고, 전남 강진에 있던 한옥 ‘관석헌’을 옮겨와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었다. 실내 전시실에는 연극과 무용 등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를 설치했다. 손숙 박정자 등 연극인들이 이곳에서 특별공연을 했다.

개관 10주년(5월 15일)을 앞두고 지난 주말 만난 김 관장은 “처음 박물관을 지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만류했는데, 벌써 10년이 흘렀다”며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찾아와 전시품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게 보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집사람도 이제 박물관에 애착을 갖게 돼 부관장을 맡았다. 유물 하나하나가 자식 같다”고 말했다.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에 등록된 세계 150여개국의 2만여 박물관 가운데 ‘얼굴’을 테마로 하는 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김 관장은 “태초 이래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수백억명은 됐을 텐데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고 인생이 담겨 있어 수집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박물관은 개관 10주년 기념으로 6월 9일까지 ‘꽃 단지와 꿀병-꿈을 접은 도자기’ 특별전을 연다. 김 관장이 일본 중국 유럽 등에서 수집한 꽃문양과 사람 모습이 새겨진 도자기 500여점을 전시한다. 한쪽에는 메릴린 먼로 등 유명 인사들의 희귀사진도 볼 수 있다. 전시품은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두지 않고 아무렇게나 배치해 보물찾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경기도 광주=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