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정구] 세월호 침몰을 돌아보며

입력 2014-05-14 02:53


타이타닉호 침몰 후 선장과 승무원들이 목숨을 희생해가며 설정해 놓은 사명이 ‘승무원들은 승객을 먼저 구하고 자신들은 최후에 탈출해야 된다’였다. 이 사명은 선장과 승무원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세계 모든 사람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얼마 전 침몰한 이탈리아 여객선 선장과 한국 선장이 이 불문율을 깨버린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사고 직후 먼저 탈출한 것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기본적인 사명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세월호 사고는 요즘 한국을 흔들어 놓는 큰 사건들에서 드러나고 있듯 사명을 잃고 표류하는 한국사회의 치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은 대형 사건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면 대부분 인재로 결론나고 회사의 경우 이 인재의 원인은 경영 과정상의 문제로 요약된다. 직접적 원인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린 선장과 승무원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사명을 버리는 행동을 촉발한 것은 세월호를 운영하는 회사가 평소 직원들의 사명을 어떻게 강화했었는지에 달려 있다. 회사는 직원들이 사명을 실험하고 복원하는 플랫폼이고 이들을 단련시키는 운동장이다.

청해진해운은 이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히려 회사가 나서서 사명을 죽이고 이윤만을 따라서 회사를 운영하는데 선두에 선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인 사명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라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회사의 경영 형태가 가져온 결과가 세월호 사건이다.

평소 적절한 수준의 월급도 주지 않고, 근무시간을 쥐어짜고, 이윤을 위해 직원들의 교육비용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계약직으로 대체한 상황에서 이들에게 사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주문하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다. 평소 회사에 불만을 품고 있었을 선장과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고객을 버리고 자신들만 탈출에 성공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이번 사고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사명의 사망선고를 주도한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인재다.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론이 회사의 사명만 죽인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논리는 정치, 행정에도 깊숙이 도입되어 있고 대학, 심지어 종교에도 무분별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경쟁과 이윤이라는 신자유주의 쌍두마차가 사명에 의해 통제되지 못할 경우 말 그대로 고삐 풀린 망아지에게 마차를 맡긴 꼴이 된다.

이 점을 두고 니체는 “사람들이 사명을 잃는 순간 온갖 멍청한 일들에 몰두하기 시작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모든 분야에서 사명이 복원되어 이 사명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지 못할 경우 이러한 사고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사고들의 전조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고로 한국은 사명을 상실하고 표류하는 대표적 국가라는 낙인이 찍힌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선사의 직원도 아닌 협력사 안내직원이었던 박지영씨는 지난 16일 침몰하는 상황 속에서 학생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변을 당했다.

“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느냐”는 한 학생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박씨는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사회가 살아날 수 있는 희망의 불씨는 말만 현란한 정치가들이나 돈만을 좇아 영혼을 버린 회사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의 희망은 이들과는 독립적으로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의 업이 명하는 사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해가며 사명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숨겨진 분들에게 있다.

꽃다운 20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박지영씨와 유가족들께 심심한 조의를 전한다.

윤정구(이화여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