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비관론’이 필요한 참사 대책

입력 2014-05-14 02:31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메디슨 미국 4대 대통령이 쓴 ‘연방주의자 논집 제51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워낙 구원과 거리가 먼 존재이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야심에는 야심으로, 이익에는 이익으로 맞서게 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불필요할 것이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입법·행정·사법부로 권력을 나누고도 이중, 삼중의 견제장치를 만든 이유를 메디슨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론자였던 것이다. 탐욕과 이기심에 취약한 인간을 견제하고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어떤 정체(政體)도 독재가 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 선서를 하기도 전에 대통령 탄핵 규정을 만들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비관론 내지 비극적 인식은 여전히 미 정부와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핵 추진 항공모함 11척과 잠수함 71척을 보유한 미 해군이 60년 이상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는 데는 ‘인간을 믿지 말고 시스템을 믿어라’는 철학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미 해군은 원자로 운영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이를 지키는지 동료 간에 상호 감시하도록 했다.

미 연방기관들을 방문하다 보면 검문·경비를 맡은 직원들이 해당 기관이 아니라 별도 조직이나 민간 계약업체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사 출입·경비에도 견제의 원리를 살려 해당 기관 직원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변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참담한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정부와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비관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삼권분립이라는 근대 민주정의 겉틀은 수입했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세계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제왕적 대통령’이다. 여기에는 국정 최고지도자가 가장 공정하고 중립적이며, 공익에 사심 없이 헌신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깔려 있다.

관료들의 권한 남용과 자의적인 판단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둔감했다. 여기에는 경제개발 연대의 관료들이 이룬 성취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 드러나고 있다.

이는 해양수산부 관료나 해경 직원들의 산하 단체·협회와의 유착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해운업계의 정경유착은 금융계와 산업계의 그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게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최근 수년간 잇따르는 보험·증권·은행 등 금융계의 각종 사고는 사람의 목숨이 관련되지 않았을 뿐 국민들의 재산에 끼친 손실이나 한국 금융시장에 초래한 심각한 불신을 감안할 때 대형 참사에 비견될 만하다.

이러한 금융계와 산업계의 참사도 보험·은행·무역협회 등 이익단체의 우두머리에 규제의 칼자루를 쥐었던 고위관료들이 내려가는 관행과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는 관료들에 대한 과도한 낙관론에 빠져 규제와 감시로 작동되는 제도가 무력화되도록 방치했다.

저명한 현실주의 국방·안보전략가인 로버트 D 카플란은 헌법을 비롯한 미국의 제도가 비관론자들에 의해 설계되었기에 미국인들은 낙관주의를 누릴 여유가 있다고 했다. 현재의 대통령제와 관료들에 대한 낙관론을 깨야 세월호 참사 대책이 겉돌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