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조연들
입력 2014-05-14 02:31
언제부턴가 조연들을 좋아하며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연들은 정말 연기를 잘한다. 주연들은 대체로 20대 안팎의 젊은 신인들인 데 비해서 한때는 소위 잘 ‘나가던’ 배우들이었던, 늙수그레한 조연들이 연기하는 아버지 역의 아버지는 그 배우들의 연륜 때문인지 정말 아버지 같고, 어머니 역의 어머니는 정말 어머니 같다. 그래서 생각지 않은 눈물도 흘리게 된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내가 주목을 하는 장면엔 딸도 역시 주목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순간, 아, 좋은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할 때도 있다.
그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탤런트로 나와 나의 딸이 그냥 ‘바이올린 아저씨’라 부르는 탤런트가 있다. 그의 이름도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딸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바이올린이 취미라고 한다.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저렇게 무능하게 보이는, 약간 머리가 모자라는 듯한 아버지로 나오는 저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두 개의 그림이 합치되질 않는다.
언젠가 보았던 TV미니시리즈 속에서 그는 정말 무능한 남편이며, 무능한 아버지였으며, 그러므로 가장다운 가장 노릇을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그의 아내는 돈을 버는 ‘똑똑한 여편네’이다. 그러니까, 가장 노릇을 하는 여편네의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우습기도 하고, 어떨 때는 연민이 느껴지기까지도 했다.
하긴 진정한 명배우란 ‘잘한다’라는 느낌도 넘어서야 한다지만.
아무튼 조연들은 우리들의 가린 곳을 주연 배우보다 잘 보여준다. 아버지 역, 어머니 역, 언니 역, 형 역, 동네사람 역…. 그들은 분명 주연보다 중요하다. 그들이 ‘잘 받쳐 주어야’ 주연을 하는 어린 여자 탤런트, 남자 탤런트들은 더 예쁘고 근사해 보인다. 주연을 더 예쁘게, 근사하게 보이게 하는 만큼 더 바보 같게, 또는 더 뚱뚱하게 보이는 그들, 조연들. 그럼에도 그들은 가려 있다. 그들 얼굴의 주름 속에는 심상치 않은 수십명, 아니 수백명의 인생이 들어 있음에도.
이참에 ‘우리 사회의 조연들’도 잘 살펴주자.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연들’을 잘 받쳐주게 하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을 들으며….
‘토대’가 건강한 사회,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 조연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사회, 조연들의 가녀린 바이올린 선율이 주연들의 무대를 가린 커튼을 살짝 젖히며 흔드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