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수학 포기할래”… 자녀가 폭탄선언 한다면?
입력 2014-05-14 02:25
“엄마! 나 수학 포기할게. 그 대신 국어, 영어 공부 더 열심히 할게요!”
지난 주말 학교에서 돌아온 가람(가명·고1)이는 거실 소파에 풀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람이 엄마 이미숙(45·서울 은평구 진관2로)씨는 가슴이 벌렁거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며칠 전 이씨는 가람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가산점이 다른 과목보다 훨씬 높은 수학은 대학 당락을 가르는 과목이어서 특강을 마련하니 신청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주간 학습지 ‘더블리치수학캠프’ 조안호 대표는 “현재 초등학생의 30%, 중학생 50%, 고등학생 70∼80%가 수학을 포기하거나 반포기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학원가나 학생들 사이에선 ‘수포자’, 즉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을 가리키는 은어가 익숙할 정도다. 가람이처럼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지 않은 수포자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1학기 중간고사 시험 결과 수학이 다른 과목에 비해 점수가 현저히 낮다면 수포자이거나 예비 수포자일 수 있으므로 부모들은 눈여겨봐야 된다. 수학 전문가들의 도움말로 수포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다.
◇학원을 끊어라=정철희 자기주도학습연구회 정철희 회장은 “공부란 모르는 것을 알아 가는 과정인데, 학원만 다니는 아이들은 ‘알 것 같다’의 수준에서 멈춘다”면서 “그만 배우고 혼자 스스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수학은 손으로 풀지 않고 풀이과정을 귀로 듣기만 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를 직접 읽고, 분석하고, 이 문제와 연관된 개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풀이 방법을 찾아 정확하게 풀어 봐야 한다.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확실하게 살펴봐야 한다. 또 적당한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풀어 보고, 정리해야 한다.
◇끊어진 연결 고리를 찾아 이어주라=수학은 학년별로 배워야 하는 과정(표 참조)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조 대표는 “수학은 단계마다 탈락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서 “자녀의 시험지에서 틀린 부분을 살펴보고 어느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서 그 부분의 기초를 확실히 잡아 주라”고 당부했다.
고 1의 수포자 대부분은 중학 수학, 특히 방정식과 함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다. 초등학생은 수 연산, 중학생은 수식, 고등수학은 다양한 수식의 확장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 고1은 어렵긴 하지만 새롭게 배우는 개념은 없다. 따라서 중학교 때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 중학생 때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하는 ‘조기 수포자’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배우는 분수를 완전하게 익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학을 포기했다는 자녀들을 학원에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학원은 대부분 선행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라도 초등학교 5학년 문제집을 마련해 분수 셈을 다시 배우고, 고등학생은 중학교 1∼3학년 수학 중 방정식이나 함수 관련 과정을 익혀야 한다.
◇연산 능력을 키워라=수학교육 선진화 방안에 따라 수학 교과서가 달라졌다. 실생활 소재와 스토리텔링 방식의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수학은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 창의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말 그럴까? 조 대표는 “수학의 목표는 사고력을 통하여 집중력과 문제해결력을 키우는 것이지만 연산력을 무시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수학 시험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하게 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연산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학교 수학은 사고력이 뛰어나도 연산력이 뒤처지면 수학을 포기하게 된다. 중·고등학교에서도 빠르고 정확한 연산력은 기본이다. 연산력을 기르기 위해선 반복이 필수이므로 주 5∼6일 꾸준히 연산문제를 풀어야 한다.
◇개념을 확실하게 잡아 주라=연산력이 수학공부의 기본 조건이라면 개념 확립은 필수 조건이다. 조 대표는 “유형별 문제를 다양하게 풀게 할 뿐 개념 정리는 뒷전인 학원에 다니면 당장 점수는 좀 오르지만 식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풀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수학에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개념은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등호(=), 부등호(>,<)다. 중학교에선 마이너스(모자라다), 등식의 성질, 절댓값, 거듭제곱 정도다. 개념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다양한 응용문제도 풀 수 있다.
수학섬 수학교육연구소 김성태 소장은 “수학의 개념을 잡고 싶다면 교과서의 학습 목표와 도입부를 꼼꼼히 읽고 단원별 목차를 외우라”고 의외의 주문을 했다. 교과서 각 단원의 학습목표는 왜 이 단원을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나침반으로, 동기부여를 해주고, 앞서 배운 단원과의 연계성을 알게 해 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단원별 목차를 외우는 것은 머릿속에 폴더를 만들어 놓는 것과 같은 작업으로, 수학 문제를 풀 때 관련 있는 부분을 빨리 찾아 활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김 소장은 “개념노트를 마련해 교과서에서 공부한 개념을 스스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를 풀다 막힐 때는 교과서의 해당 개념을 다시 찾아 공부해서 완전하게 익히도록 한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