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베테랑스 아너

입력 2014-05-13 02:46

유난히 외침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서 무인(武人)들이 그리 높이 평가받지 못한 것은 의외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문(文)을 우위에 둔 선비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광개토대왕과 근초고왕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복군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서도 신명 바쳐 조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한 장군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 맹장 양만춘을 비롯해 을지문덕, 대조영 등등. 황산벌 전투의 영웅 계백과 화랑도의 기상을 드높인 김유신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상무(尙武)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의 사회적 기여도에 대한 평가가 인색한 것은 고려 무신란과 5·16이나 1979년 ‘전두환 신군부’의 12·12 같은 쿠데타 때문일 것이다. 위화도 회군도 군사반란임이 명백하다. 하기야 쿠데타 세력이 스스로 반란임을 자인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반면 서양은 전통적으로 군인에 대한 존경심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미국만 하더라도 짧은 역사 탓에 군인들이 정권을 잡을 기회도 없었지만 참전 군인의 경우 자부심과 사회적 평가가 높다. 육사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사병 출신들도 희생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로 인정돼 기업에서도 크게 환영받는다고 한다.

군인에 대한 고평가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미 품종 이름의 하나인 ‘베테랑스 아너(veterans honor)’가 아닐까. 장미는 종류가 하도 많아 이름도 갖가지다. 베테랑스 아너는 미국 품종으로 퇴역 군인들의 자긍심을 상징하듯 잎과 꽃 모양이 당당하다. 적색 계통 장미로는 보기 드물게 딸기 냄새와 비슷한 라스베리향이 난다. 미국인들의 퇴역 군인들에 대한 평소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편한 제복을 입고 밤낮없이 나라를 지킨 전역 군인이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불행이다. 목숨 걸고 전장에 나간 젊은이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것은 의무복무제가 원칙인 우리로서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욕보이는 일일 수도 있다. 사기진작책을 고려함직하다.

다만 엊그제 12·12의 주역들이 군인연금을 달라고 정부에 소송을 낸 것은 보기에 민망했다. 군인연금법에 내란죄와 반란죄를 범한 사람에게는 연금을 주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는 것을 알고도 소송을 낸 것이다. 해당 규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철이 없는 것인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인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