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VS 구상’의 독창적 예술세계 펼쳐진다

입력 2014-05-13 02:31


화단 중진작가인 홍익대 선후배 김태호·고영훈 나란히 개인전

추상과 구상. 미술에서 대립되는 두 가지 표현방법이다. 추상은 사물의 특징을 점·선·면에 의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미술이고, 구상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하는 미술이다. 추상과 구상 분야에서 각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두 작가의 전시가 나란히 열려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태호(65)와 고영훈(62). 홍익대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국내 화단의 중진작가 가운데 각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로 노화랑에서 14일부터 개인전을 여는 김태호(홍익대 교수) 작가는 추상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캔버스 위에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로 스무 가지 이상의 색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두툼하게 색을 올리다보니 물감 사용량이 엄청나다. 단순하게 붓질만 하는 작가들보다 10배 이상 물감을 사용한다. 색칠이 끝나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 칼로 홈을 파내면 밑에 숨어있던 색들이 하모니를 이루며 나타난다.

그의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걸리는 것도 있다. 그런 수고를 거친 작품은 달콤한 꿀을 가득 저장하고 있는 벌집 같다. 섬세한 숨결이 속삭이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을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돌을 정상에 올렸다가 다시 아래로 굴려 내리는 과정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과 같다”며 “이는 결코 헛수고가 아니고 한국 추상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이라고 평했다.

단색조(모노크롬)회화로 유명한 박서보 화백을 고교시절 만나면서 추상화에 매료된 작가는 1970∼80년대 모노크롬 회화운동에 참여했다. 색채의 덩어리로 이뤄진 그의 추상 작업은 리듬을 선사하면서도 일정한 규격으로 치밀한 구조를 드러낸다. 그래서 ‘내재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색깔의 대작을 걸어 시원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림 해석은 관람객의 몫이지만 화면에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을 상상해보는 게 추상화 감상의 묘미가 아닐까(02-732-3558).

서울 종로구 평창로 가나아트센터에서 6월 4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고영훈 작가는 극사실주의 회화의 진수를 선사한다. 2006년 이후 8년 만의 전시에 ‘있음에의 경의’라는 타이틀로 도자기 시리즈, 책과 꽃 시리즈, 자신과 아들의 초상화 등 신작 40여점을 선보인다. 작품이 사진보다 더 실제 같다. 하지만 그는 “닮게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사물을 만들어내는 ‘창조’라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시간’이 담겼다. 꽃 그림을 그릴 때 마당에서 직접 꽃을 기르며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을 관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간을 생각하게 됐다. 도자기는 점차 흐릿해지는 형상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라진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다. 작가의 자화상과 둘째아들의 초상화 등 인물화를 ‘세대(Generation)’라는 제목으로 처음 내걸었다. 세대가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외모는 바뀌지만 본질은 같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단다.

197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이것은 돌이다’라는 제목의 그림을 내걸어 화제를 모은 작가는 40년간 외길을 걸어왔다. 극사실주의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시력도 나빠진다. 그는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붓질하고 있다고. “추상과 구상은 분리해서 얘기할 것이 아니죠. 허상도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관념적인 차원을 떠나 작가 특유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마음의 평정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전시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