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문화] 찬밥된 ‘한식 세계화’… 진흥 법안도 한숨만
입력 2014-05-13 02:16
며칠 전 ‘서울 고메 2012’에서 만났던 셰프와 음식 칼럼니스트, 레스토랑 홍보 담당자 등 몇 사람을 만나 식사를 했다. 서울 고메는 한식의 우수성을 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해외 유명 셰프들을 국내에 초빙했던 행사였다. 장소는 꽤 고급스런 한정식집으로 음식은 멋진 도자기 접시에 보기 좋게 담겨 나왔다. 이 정도면 외국인들에게 내놓아도 모자람이 없겠다고 얘기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한식 세계화로 이어졌다.
지난 이명박정부 때 ‘영부인 프로젝트’란 별명까지 얻으며 시끌벅적하게 진행됐던 한식의 세계화가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며 아쉬워들 했다. 예산 남용 등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사업인데 이번 정부에서 너무 나 몰라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여자 대통령이어서 더욱 박차를 가할 줄 알았더니 의외라고 했다. 그러자 시간 여유가 좀 있는 영부인들이 나서기 좋은 프로젝트이지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에는 2%쯤 덜 중요한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물론 박근혜정부가 한식 세계화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정부에 비해 예산이 좀 줄어들긴 했어도 올해도 여전히 126억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한식 세계화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한식과 한식문화’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또 김무성 김학용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주축이 돼 ‘한식 진흥에 관한 법률’ 법안도 마련했다.
문제는 한식 세계화에 대한 열정이 식으면서 정책들이 겉돌고 있다는 데 있다. 한식 진흥에 관한 법률만 해도 그렇다. 이 법안에는 올해 한식 세계화 예산의 3배가 넘는 399억 4600만원을 들여 2017년까지 한식종합체험시설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이미 국내에 다양한 음식체험시설이 있으나 내국인은 물론 해외 관광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터다. 그런데 그 많은 예산을 들여 대형 체험시설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스토리텔링이 중시되는 21세기에 널찍한 시설 안에 각 지역의 다양한 한식을 모아 놓고 관광객들에게 맛보이자는 편의주의적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체험시설에 마련된 제주 코너에서 비행기로 실어 온 해산물을 먹은 관광객들이 한식을 기억할까? 제주 성산포 바닷가에서 해녀가 갓 따온 해산물로 조리한 오분자기 뚝배기를 먹은 관광객들이 그 음식을 다시 먹고 싶어 할까?
건물 짓고 이를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만만치 않을 비용은 우리들의 세금이다. 이 정부는 MB정부보다 한식 세계화와 관련해 더 크게 헛발질할 채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