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대형병원 진료실 변화 바람… “3분 진료 없애고 환자들과 소통”

입력 2014-05-13 02:03


한 대형병원의 진료실, 담당 주치의는 컴퓨터 모니터만 응시한 채 환자에게 무미건조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환자는 교수 눈치만 살피다 궁금한 내용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내 입을 다문다. 그렇게 마주한 시간은 고작 3분. 이처럼 대형병원의 진료실 풍경은 삭막하기만 하다. 그동안 한국의 의료는 기술적 향상에 매달려 환자-의사 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간과돼 왔다. 또한 실정에 맞지 않은 진료 수가는 한정된 진료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환자를 보도록 설계돼 있다.

교감보다는 업무의 효율성, 환자와의 대화보다는 수치가 지배하는 삭막한 진료실에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건국대병원은 대형병원의 악명 높은 ‘3분 진료’를 없애고 환자들이 원하는 진료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양정현 의료원장은 “의료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는 무척 중요한데, 두 사람 간의 신뢰는 진료실에서 나눈 대화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따로 공부할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았던 것이 의료계 현실이다. 어린아이들처럼 의사소통 방법을 배우라고 했을 때 잘 따라준 후배 교수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는 주치의로부터 관심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진료만족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로부터 받은 관심이 치유와 직결된다고 여긴 것이다. 이는 치료과정에 대한 설명만큼 여담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의료진 입장에서는 환자와의 여담을 위해 굳이 의사소통 교육까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을 표시해 주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 개인의 성격에 달린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양정현 원장은 “많은 의사들이 환자에게 질병에 대한 설명을 잘 해 줬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환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는 시간의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와 교감하며 대화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며 “환자의 일상, 관심사 등을 고려하며 나누는 진료실 대화는 환자의 치료 순응도를 높이고 결과적으로는 의료진의 업무 피로도를 줄여줄 것”이라며 의사소통 교육을 실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의사소통 교육 프로그램은 진료실을 비디오 촬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의료진은 녹화된 진료실 모습을 통해 환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환자에게 소외감을 안겨줄 만한 자신의 행동을 찾아보는 간접적 경험이다. 이 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김동림 교수는 “전문의 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내가 어떻게 환자를 바라보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몰랐다”며 “변수가 많은 진료환경에서 반드시 환자의 생각과 감정을 배려한 진료가 되리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교육이 필요하고 후배들이 이런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에 참여한 피부과 안규중 교수는 “진료실은 환자와의 라뽀(긴밀한 신뢰감)를 형성하는 의미 있는 장소이므로 의사의 권위나 진료의 효율성은 잠시 내려놓고서 환자와의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단비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