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섬성그룹 회장은 ‘골든타임’에 이뤄진 빠른 응급처치 덕분에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자택에 있던 이 회장이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상을 느낀 건 10일 오후 10시10분쯤. 사태가 심각함을 직감한 비서진은 평소 건강관리를 맡았던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을 제쳐두고 인근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이 회장을 이송키로 했다. 승용차로 31분 걸리는 삼성서울병원이 아닌 8분 거리를 택한 것이다. 그만큼 심각했다는 얘기다.
10시56분 응급실에 도착한 이 회장의 심장은 마비상태였다. 급성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흉부외과 장원호 교수 주도로 심폐소생술(CPR)이 실시됐다. 심장마비로 뇌에 혈액 공급이 4∼5분만 중단돼도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뇌가 손상되면 회복되고서도 의식이나 지능을 되찾지 못해 정상생활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회장은 관상동맥에서 뻗어나간 동맥혈관 중 하나가 막혀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으로 전해졌다. 흉부압박과 인공호흡 등 7∼8분에 걸쳐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자 심장 박동과 호흡이 살아났다. 흉부와 양쪽 가슴 사이 정중앙 압박을 20∼30회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일단 고비를 넘겼다고 판단한 의료진과 비서진은 이 회장을 주치의가 있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11일 0시15분 이 회장은 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지에 삽관을 한 상태로 이송됐다. 권현철 순환기내과 교수 집도로 오전 1시 심장의 좁아진 혈관을 넓혀주기 위한 ‘스텐트(stent) 삽입 시술’에 들어갔다. 시술은 2시7분쯤 끝났다. 삼성서울병원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서 “순천향대병원에서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성공적으로 잘해줘 심장 기능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진정제 등을 맞고 체온을 낮춰 ‘깊은 수면상태’를 유지하는 저체온 치료를 받고 있으며, 보조기구를 활용해 자가호흡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이 24시간 저체온 치료 후 정상체온을 회복하게 되면 수면상태에서 깨어날 것으로 의료진은 예상하고 있다.
이 회장 병세는 스텐트 시술 경과와 폐 질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지만 앞으로 1주일 정도가 고비일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진은 향후 정상적으로 집무 수행이 가능할지에 대해 “응급조치와 시술이 잘 끝나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뇌에도)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사전에 심근경색 징후는 없었다”고 했다.
앞서 이 회장은 1990년대 말 폐 부근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을 받았다. 정기적 검진과 함께 겨울철을 따뜻한 곳에서 보내라는 의료진의 조언에 따라 해마다 연말에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건강을 관리했다. 올해도 1월부터 3개월간 해외에 머물렀다. 그동안 이 회장은 몇 차례 호흡기 관련 질환을 앓았다. 지난해 8월 감기가 폐렴으로 번지면서 열흘 정도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다. 이 회장은 퇴원 후 대외활동을 재개해 건강이상설을 일축하기도 했다.
김준엽 기자,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snoopy@kmib.co.kr
[이건희 회장 심장시술] 얼마나 심각했으면… 삼성병원 놔두고 순천향병원으로
입력 2014-05-12 03:32 수정 2014-05-12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