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낚싯줄에 양면테이프 붙여 부의함 턴 ‘맥가이버 도둑’

입력 2014-05-12 02:31


지난 9일 오전 4시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검은 정장을 입은 A씨(53)가 유족이 잠든 걸 확인하고 한 빈소에 들어섰다. 그는 낚싯줄에 철핀을 매달고 앞뒤로 양면테이프를 붙인 뒤 부의함에 집어넣어 돈이 든 봉투를 하나하나 꺼냈다. 빈소에 누워 있던 상주 B씨가 잠에서 깨 “누구냐”고 묻자 A씨는 줄행랑을 쳤다. A씨는 유족의 추격을 피해 장례식장 1층 화장실에 숨었고 잠시 후 화장실에 들어온 조문객 2명과 함께 일행인 양 밖으로 나왔다가 B씨에게 붙잡혔다.

A씨는 “내가 봉투를 훔쳤다는 증거가 있느냐. CCTV를 보자”며 잡아뗐으나 유족 중 한 명이 A씨의 상의 왼쪽 주머니에 삐죽 솟아 있던 낚싯바늘을 잡아당기자 부의금 봉투가 줄줄이 달려 나와 덜미를 잡혔다. A씨가 훔친 조의금은 모두 15만원. 범행이 발각되자 유족에게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 “대리운전을 하러 가야 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바로 옆 빈소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봉투를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B씨의 빈소 부의함 바로 앞에서는 A씨가 가져온 것으로 추정되는 라이트펜도 발견됐다. 버튼을 누르면 하얀 불빛의 레이저가 나오는 장치가 달려 있고, 이 펜으로 부의함 안을 비추자 봉투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훤히 나타났다. 경찰은 A씨가 펜으로 부의함 안을 살펴본 뒤 봉투를 빼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1일 A씨를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A씨의 수법이 치밀하고 전문적이어서 추가 범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