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설비투자 ‘극과 극’… 얼어붙는 中企·얼음 녹는 대기업

입력 2014-05-12 02:43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경기 탓에 중소기업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차츰 나아져 대기업의 투자는 늘어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예외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이 크게 추락(원화가치 상승)하면서 실적 악화 우려만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고통은 이들의 설비투자 비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정책금융공사는 11일 국내 1249개 중소기업이 올해 약 6조7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쓸 계획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설비투자에 쓴 돈인 7조2000억원보다 5000억원(7.1%) 줄어든 수치다. 중소기업의 설비투자 비용은 2012년 8조2000억원에서 매년 줄어들고 있다.

비제조업 중소기업은 설비투자 비용을 올해 무려 14.2%나 줄일 방침이다. 비제조업 중소기업은 2012년 2조원, 2013년 1조9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썼지만 올해는 1조6000억원만 쓴다는 계획이다. 이 중 정보서비스업종과 하수·폐기물처리 업종 등은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해 전년보다 24.3%, 30.6%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반면 대기업은 올해 들어서면서 설비투자가 회복세다. 대기업으로 분류된 1815곳은 올해 129조4000억원을 설비투자에 쓰기로 해 2012년(122조8000억원)과 지난해(123조1000억원)보다 크게 늘어났다.

특히 운송장비와 화학제품 업종의 대기업 설비투자가 크게 강화될 전망이다. 이들은 각각 전년보다 29.8%, 16.4% 투자비용을 늘리기로 했다. 정금공은 “운송장비 업종은 업황 부진이 이어졌던 조선업종에서 그간 투자하지 못했던 것들이 넘어오면서 투자비용은 늘었다”며 “화학제품 역시 선진국 경기회복에 힘입은 바 크다”고 예상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이 여전히 투자 부진을 겪는 것은 그만큼 경기상황이 좋지 못한 탓이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물건이 팔리지 않고 향후 경기전망까지 나쁘게 예상되자 투자비를 졸라맨 것이다. 실제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으로 중소기업의 35.5%는 ‘수요 부진’을, 31.2%는 ‘불확실한 경기전망’을 꼽았다.

문제는 환율 하락으로 전망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일 1024.4원까지 하락했다. 증권사 연구원들은 단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선까지 추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의 경우 더 큰 수요 부진이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다. 하이투자증권 손효주 연구원은 “최근의 원화 강세로 인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주요 생산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업체들의 실적 우려가 높다”며 “달러 결제가 이뤄지면 벌어들이는 절대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환율 추락에 대한 대비가 부족해 타격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키코(KIKO) 트라우마에 갇혀 환헤지(hedge·위험회피)를 외면하고 있다. 키코는 환율의 급변동을 예상해 가입하는 통화옵션 상품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예상과 다른 환율의 등락으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이 되레 타격을 입었다.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금공 김흥상 팀장은 “제조업은 내수진작과 함께 수출여건 개선이, 비제조업은 자금 지원 등으로 업종에 맞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