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음주 후 복통 땐 췌장염 의심
입력 2014-05-12 02:10
직장에서 ‘술꾼’으로 통하는 A씨(50·서울 양천구)는 최근 배꼽의 왼쪽 아랫부분 복부가 갑자기 심하게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주 2∼3회 술을 마시는 그는 혹시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급·만성 췌장염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 업무상 필요나 스트레스, 혹은 습관성으로 술자리가 많은 탓이다. 췌장염은 자칫 치료시기를 놓치거나 호르몬 분비 계통 손상으로 발전할 경우 당뇨병을 합병하게 되고, 심한 경우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한 질환이다.
과음 뒤 나타나는 복통이 평소와 다르다고 느껴지거나, 몇 달 이상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되고 있다면 한번쯤 췌장질환을 의심해 보자. 특히 업무상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의 경우 소량이라도 음주 후 등이나 옆구리 쪽이 아플 때, 혹은 속이 메스껍고(오심) 구토를 자주 할 때는 서둘러 전문의를 찾아 반드시 정확한 진단을 받아 보도록 하자.
◇급·만성 췌장염, 술이 가장 큰 원인=췌장은 명치보다 약간 아래 등 쪽에 위치해 있는 장기다. 인슐린 호르몬을 분비해 당대사를 돕고, 음식물을 소화·흡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췌장염은 말 그대로 이런 췌장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급성췌장염과 만성췌장염이 있다. 급성췌장염은 담즙이나 췌장에서 분비된 효소가 췌장 안으로 역류해 췌장조직을 갉아먹는 병이다. 대개 가벼운 부종만 일어났다 쉽게 낫지만, 심하면 췌장 주위로 효소가 새어 주변 장기까지 녹여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급성췌장염이 생기는 이유는 70∼80%가 알코올과 담석증 때문이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 능력이 적어 남성보다 적은 양의 음주를 했을 때에도 쉽게 급성췌장염이 올 수 있다.
담석이 원인인 경우는 쓸개나 담도에서 만들어진 담석이 담도를 타고 내려오다 담도와 연결된 췌관을 막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밖에 고칼슘혈증이나 고지질혈증, 약물, 세균감염 등이 1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원인불명이다.
급성췌장염의 주된 증상은 복통이다. 가벼운 통증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극심한 통증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뭔가가 찌르는 듯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어깨와 가슴, 등 쪽으로 퍼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열과 함께 구역질과 구토 증상을 동반하기도 하며, 심한 경우 복부 주위 피부에 멍이 생기기도 한다.
만성췌장염은 장기간의 알코올 섭취 등에 의해 췌장조직이 섬유화되면서 췌장실질이 쪼그라든 상태를 말한다. 역시 잦은 음주와 폭음 습관이 발병 원인의 70∼80%를 차지한다.
비에비스나무병원 홍성수 원장은 “폭음을 하거나 술을 자주 많이 마실수록 췌장염 위험이 커지지만, 소량의 술을 장기간 마시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며 “평소 술에 약한 사람이 폭음한 후 배가 아프다면 만성췌장염 쪽보다는 급성췌장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만성췌장염은 식사 후, 특히 지방분과 알코올 성분을 다량 섭취했을 때 윗배와 등 부분이 아파온다. 병이 심해지는 것과 비례해 통증이 잦아지고, 췌액 분비가 나빠지면서 음식물의 소화, 흡수가 잘 안돼 설사를 하고 체중이 줄어드는 증상을 보인다. 인슐린 분비에 문제가 생겨 당뇨병에 걸리기도 한다.
◇췌장 건강은 금주가 가장 좋은 방법=췌장염은 때때로 담석증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담석이 췌관을 막아 췌액 분비를 방해할 때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췌장 상태와 합병증 여부 등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복부 초음파 및 CT 검사가 필요하다.
급성췌장염은 췌장이 붓기는 해도 별다른 합병증 없이 적절한 통증치료와 금식만으로도 대부분 잣 낫는다. 금식을 하면 음식물 섭취에 맞춰 소화효소를 분비해야 하는 췌장이 쉴 수 있고, 그 덕분에 염증도 가라앉는 까닭이다.
물론 금식을 하는 동안에는 탈수 예방을 위해 수액 주사를 맞는 것이 좋다. 아울러 위장도 비우는 것이 조기 치료에 도움이 된다. 통증 완화를 위해서는 진통제 처방이 필요하다.
담석증에 의한 급성췌장염일 경우엔 내시경을 집어넣어 담도와 췌관에 있는 담석을 제거하는 시술(ERCP)을 받아야 한다.
만성췌장염 환자들은 이미 췌장의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고유기능이 망가져서 어떤 치료를 해도 정상회복이 어렵다. 다만, 금주를 하면 복통을 50%정도 줄일 수 있다. 식사 후 소화제를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췌장염 예방을 위해서는 과음이나 폭음을 삼가고 소량의 술이라도 자주 마시지 않도록 하는 등 음주습관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홍 원장은 “특히, 술로 인해 췌장염에 걸린 경험이 한번이라도 있는 사람은 재발 위험이 높은 만큼 술을 끊는 것이 좋다”며 “커피, 홍차, 향신료 등 자극성 있는 음식을 삼가고 과로와 스트레스도 잘 다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