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로빈슨의 42번, 메이저리그 전 구단이 영구결번으로

입력 2014-05-12 02:04


영구결번이란 스포츠 구단에서 은퇴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훗날 다른 선수들이 그의 등번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정하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처럼 조건이 까다롭진 않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공적을 쌓은 소수의 선수들만 영구결번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

프로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은 1939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나왔다. 1920∼30년대 양키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4번 타자로 활약한 루 게릭이 주인공이다. 게릭은 1923년 양키스에 입단해 1939년 시즌 중반 은퇴할 때까지 12년 연속 3할대 타율, 40홈런 이상 5회 등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당시 3번 타자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그는 1938년 시즌 후반기부터 몸에 이상을 느끼면서 이듬해 은퇴를 선언했다.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이 파괴되고 근육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병은 현재 ‘루게릭병’으로 알려져 있다. 양키스 구단은 그의 은퇴와 함께 등번호 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는 스타 선수들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감독도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지금까지 120여명이 지정됐으며 인기 구단일수록 영구결번이 많다. 양키스의 경우 부임기간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6번의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이끈 조 토레 전 감독의 등번호(6번)을 영구결번한다고 9일 발표했다. 양키느는 이로써 17개의 영구결번을 갖게 됐다.

한번도 받기 힘든 영구결번의 영광을 무려 3개 구단에서 받은 선수도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LA 에인절스에서 활약을 펼쳤던 놀란 라이언이다. 통산 325승292패를 기록한 라이언은 메이저리그 최다 탈삼진인 5714개 기록과 함께 노히트 노런을 통산 7회 기록하며 세 구단 모두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1947년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재키 로빈슨은 메이저리그 전 구단에서 영구결번을 가진 선수다. 그는 10년간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에서 통산 타율 0.311, 안타 1518개, 홈런 137개, 타점 734점 등을 기록했다.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선 그의 활약 때문에 메이저리그는 피부색과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게 됐으며 야구는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됐다.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의 업적을 기려 등번호 42번을 모든 구단에 사용할 수 없게 했다. 다만 이미 사용하는 선수들은 계속 달도록 했는데,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리베라가 지난 시즌 은퇴한 뒤 양키스에서 그의 42번을 영구결번되면서 메이저리그에서는 누구도 다시는 42번 등번호를 가질 수 없게 됐다. 다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재키 로빈슨 데이인 매년 4월 15일에s는 모든 구단의 모든 선수들이 42번을 달고 경기를 치른다.

메이저리그뿐만 아니라 아이스하키, 축구, 농구 등 여러 프로스포츠 종목에도 영구결번 전통이 있다. 국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프로야구 12명, 프로축구 3명, 프로농구 10명, 여자농구 2명이 나왔다. 최초의 영구결번은 1986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 김영신(OB·54번)이다. 사실 김영신은 선수 시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젊은 나이에 불의의 죽음을 맞이했고, OB는 고인을 애도하는 차원에서 첫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국내 실질적인 영구결번 1호는 1996년 선동열(당시 해태)이라고 할 수 있다. 해태를 인수한 KIA는 2002년 ‘제2의 선동열’로 불리던 루키 김진우에게 18번을 달아주려 했다가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고 취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승엽(36번)은 아직 현역에서 뛰지만 은퇴하면 삼성의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기로 결정돼 있다. 이외에 2011년까지 국내 프로축구에서 뛰며 단일 팀 최다경기 출전기록을 갖고 있는 최은성(대전)의 등번호 ‘21’은 21년간 한정 결번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다른 선수들이 관례상 이 번호를 달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영구결번으로 치고 있다.

한편 프로배구의 경우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영구결번이 없다. 국제배구연맹이 프로와 아마추어 관계없이 ‘선수 상의에 부착된 번호는 1∼18번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장지영 기자